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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lee Dec 23. 2024

그 남자가 인생을 잘라내는 법.

사람들 

그는 이렇게 이 세상을 등졌다. 

그날 아침에 문자가 왔다. 

"형이 오늘 아침 운명하셨어요" 

"시신을 가톨릭 병원에 연구 목적으로 기부하기로 해서 별도의 장례 절차는 없습니다"

참으로 간단한 통보였다. 


이 년 전 연말에 후배들에게 연락이 와서 다 같이 만난 자리에서 그가 위암 1기라는 소리를 들었다.

후배들은 제발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하자고 했다.

나에게도 야단을 좀 치라며 성화였다. 

"요즘 위암이라는 게 위를 다 잘라내고도 잘만 살더라 치료를 해야지"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수술해도 돌봐줄 사람도 없고 돈 문제도 있고요" 

그의 반응이 였다.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겼다. 

그의 누나 중 한 명은 우리나라의 굴지의 화장품회사의 회장 부인이었고 그 연고로 그도 중국 지사장을 오래 하기도 했다. 경제적인 건 걱정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2년 정도 지난 것 같다.  

그가 호스피스 병원에 있다고 그 모임을 주선했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이 아마도 오래 못 갈 거 같아요. 그래도 미리 연락을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아니 요즘에 위암에....."

"형이 계속 치료를 안 받아서.... 싸우기도 엄청 싸웠어요"


그와 나는 어떤 사이인지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알고 지낸 건 30년도 넘지만 그동안에 십수 년은 만나지 못한 적도 있다. 단 둘이 따로 대화를 한적도 별로 없었던 거 같다. 

우리는 한 직장에서 일을 했고 같은 부서에서 약간 다른 일을 했다. 우리가 일했던 부서는 테마파크의 공연을 만드는 일이었다. 월급쟁이이기는 하지만 영혼은 조금 자유로운 구성원들이었고 한편으로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몹시 강하기도 했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듯 싶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대단히 깊은 성실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런 일관성 있는 성실함이 참 좋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늘 그에게 친절했던 거 같다. 나는 누구에게나 그닥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육십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런데 시퍼렇게 날이 선 30대 초반에는 얼마나 날카로운 상태였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느 날 공연을 진행하는 준비 중이었는데 거의 지나가는 말투로 

"저 이직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나는 놀랐다. 그가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또 그걸 나에게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에도 놀랐다. 

아마도 그가 이직하려는 회사의 대표가 얼마 전까지 같이 일을 했었고 나하고도 관련이 있어서였을까?

나는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 내 생각을 말했다. 

" 여기서 단순히 공연 진행만 하는 것보다 작은 회사라도 기획 일도 하고 공연도 직접 만들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이 말 때문에 나는 그에게 늘 어떤 부채감이 있었다. 물론 그가 내 말 때문에 그 회사로 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니라고 수도 없었다. 그는 이직을 했고 이직한 그 회사에서 1년도 안되어서 퇴직을 했다. 

그가 그 회사를 그만둘 그만두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아마도 기억에는 회사를 그만둔 한참 지나서 그를 만났을 수도 있었다. 그와 나는 적어도 일신 상의 문제가 생기면 따로 의논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 후에 탭 댄스 연습실을 운영하기도 하고 대학로에서 공연 관련 일을 한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십몇 년 전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화장품회사의 사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나도 베이징에 있었지만 서로 연락을 하거나 한 기억은 없었다. 


어느 날 그를 포함한 몇 명의 후배들이 찾아왔다. 나는 이미 은퇴를 한 후였는데 찾아온 후배들이 공연 관련 회사를 만들었는데 고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일을 같이 할 형편도 못되고 투자를 할 형편은 더더욱 아니어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다. 그것이 그를 다시 가끔이라도 보게 된 기회가 되었다. 


그는 결혼을 한 적도 없어서 가족도 형제 이외는 없었다. 

도대체 이 세상에 미련이란 건 하나도 없었을까? 

장례식장에 모여 앉아서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는 것까지 없애 버리고 가다니.....

빗자루로 남아 있는 추억을 모두 쓸어 담아 들고 간 듯하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들은 이후로 나는 그를 아마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처음보다는 이제는 생각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기는 하지만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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