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그는 이렇게 이 세상을 등졌다.
그날 아침에 문자가 왔다.
"형이 오늘 아침 운명하셨어요"
"시신을 가톨릭 병원에 연구 목적으로 기부하기로 해서 별도의 장례 절차는 없습니다"
참으로 간단한 통보였다.
이 년 전 연말에 후배들에게 연락이 와서 다 같이 만난 자리에서 그가 위암 1기라는 소리를 들었다.
후배들은 제발 수술을 받고 치료를 하자고 했다.
나에게도 야단을 좀 치라며 성화였다.
"요즘 위암이라는 게 위를 다 잘라내고도 잘만 살더라 치료를 해야지"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수술해도 돌봐줄 사람도 없고 돈 문제도 있고요"
그의 반응이 였다.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겼다.
그의 누나 중 한 명은 우리나라의 굴지의 화장품회사의 회장 부인이었고 그 연고로 그도 중국 지사장을 오래 하기도 했다. 경제적인 건 걱정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2년 정도 지난 것 같다.
그가 호스피스 병원에 있다고 그 모임을 주선했던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이 아마도 오래 못 갈 거 같아요. 그래도 미리 연락을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아니 요즘에 위암에....."
"형이 계속 치료를 안 받아서.... 싸우기도 엄청 싸웠어요"
그와 나는 어떤 사이인지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알고 지낸 건 30년도 넘지만 그동안에 십수 년은 만나지 못한 적도 있다. 단 둘이 따로 대화를 한적도 별로 없었던 거 같다.
우리는 한 직장에서 일을 했고 같은 부서에서 약간 다른 일을 했다. 우리가 일했던 그 부서는 테마파크의 공연을 만드는 일이었다. 월급쟁이이기는 하지만 영혼은 조금 자유로운 구성원들이었고 한편으로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몹시 강하기도 했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듯 싶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대단히 깊은 성실함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런 일관성 있는 성실함이 참 좋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늘 그에게 친절했던 거 같다. 나는 누구에게나 그닥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육십이 훌쩍 넘은 지금도 그런데 시퍼렇게 날이 선 30대 초반에는 얼마나 날카로운 상태였을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느 날 공연을 진행하는 준비 중이었는데 거의 지나가는 말투로
"저 이직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나는 놀랐다. 그가 이직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또 그걸 나에게 의견을 물어본다는 것에도 놀랐다.
아마도 그가 이직하려는 회사의 대표가 얼마 전까지 같이 일을 했었고 나하고도 관련이 있어서였을까?
나는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 내 생각을 말했다.
" 여기서 단순히 공연 진행만 하는 것보다 작은 회사라도 기획 일도 하고 공연도 직접 만들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이 말 때문에 나는 그에게 늘 어떤 부채감이 있었다. 물론 그가 내 말 때문에 그 회사로 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이직을 했고 이직한 그 회사에서 1년도 안되어서 퇴직을 했다.
그가 그 회사를 그만둘 때 왜 그만두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아마도 내 기억에는 그 회사를 그만둔 후 한참 지나서 그를 만났을 수도 있었다. 그와 나는 적어도 일신 상의 문제가 생기면 따로 의논을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 후에 탭 댄스 연습실을 운영하기도 하고 대학로에서 공연 관련 일을 한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십몇 년 전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화장품회사의 사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나도 베이징에 있었지만 서로 연락을 하거나 한 기억은 없었다.
어느 날 그를 포함한 몇 명의 후배들이 찾아왔다. 나는 이미 은퇴를 한 후였는데 찾아온 후배들이 공연 관련 회사를 만들었는데 고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일을 같이 할 형편도 못되고 투자를 할 형편은 더더욱 아니어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다. 그것이 그를 다시 가끔이라도 보게 된 기회가 되었다.
그는 결혼을 한 적도 없어서 가족도 형제 이외는 없었다.
도대체 이 세상에 미련이란 건 하나도 없었을까?
장례식장에 모여 앉아서 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는 것까지 없애 버리고 가다니.....
빗자루로 남아 있는 추억을 모두 쓸어 담아 들고 간 듯하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들은 이후로 나는 그를 아마도 가장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처음보다는 이제는 생각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기는 하지만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