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두 번째 애국가
댓글이 재밌었습니다 ‘이 노래를 애국가로’ 했으면 좋겠다는 댓글이 몇 개 있더군요. 그 아래 줄줄이 달리는 댓글도 재미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 서서 10분 넘게 노래 부르는 모습에 관한 댓글도 있네요. 원곡은 뒷부분의 연주를 포함해서 십 분이 넘는 대곡입니다.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은 이선희의 힘찬 목소리로 다시 불렸지만. 원곡은 신중현의 천재성이 강산을 아름답게 그립니다.
가사도 멋지죠? 우리나라 강산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했는데 이 노래는 유신 시대에 금지곡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래를 다시 들어봐도 왜 금지곡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반정부 가사나 종북 성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신중현이라는 천재가 그려내는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적 과격성(?)을 유신 정부에서는 허용이 되지 않은 것일까요.
김민기의 ‘아침이슬’이나 ‘상록수’ 같은 노래는 참 아름다운 음률과 서정적 가사이지만 그 당시에 역시 금지곡이었습니다. 그나마 이 노래들은 시위 현장에서 많이 불리는 노래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함께 ‘아름다운 강산’이 금지곡인 이유는 불가사의합니다.
굳이 가사를 들여다보면 ‘손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말해보자 새 희망을’ 정도의 노랫말이 정권의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렸을까요. 오히려 가사에 ‘아름다운 이곳에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는 표현은 건전가요 느낌인데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에게 유신 정권은 박정희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라고 강요하고 협박했지요.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 수 없다고 거부했던 그는 대신에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란 노래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그의 다른 노래들과 함께 금지곡이 됩니다.
불과 몇십 년 전에 이런 숨 막히는 속박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세대들이 많지요. 아니, 그런 속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신기해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앞으로도 이런 것을 모르고 겪지 않는 세대만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이 노래를 듣고, 이 노래가 애국가가 되면 좋겠다는 기발한 댓글을 다는 시대이죠. 현재의 애국가에 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가를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 애국가를 바꾸는 작업이 앞으로도 진행되기는 쉽지 않겠지요.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채현국 선생님은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이란 말씀을 남기셨지요. 채현국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애국가는 나라를 사랑해서 부르는 노래인데, 꼭 하나일 필요가 있을까도 싶습니다. 상황에 따라 ‘두 번째 애국가, 세 번째 애국가’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애국가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도 살아보고 싶어집니다. 하나의 정답만 따르는 것이 아닌 다양한 해답이 넘치는 나라에서는 가능하겠지요.
신중현 ‘아름다운 강산(1972)’ 원곡
https://youtu.be/1QxHeeSfbS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