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권력과 저울추 사용권

by 이상현

#104 권력과 저울추 사용권


권력이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모르면 찾아봐야지요. 이렇게 쉬운 기본 단어에 대해 누군가에게 물어보기도 뻘쭘하고, 지금은 혼자 있어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찾아봐야지요. 사전을 펼칩니다. 아니 사전을 클릭합니다.


권(權)은 나무 목(木)에 황새 권(雚)이 합쳐진 글자입니다. 기품이 있는 황새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권력자의 모습으로 그렸군요. 제가 글자를 만들었다면 권에 황새가 아니고 호랑이 정도를 그렸을 것 같은데, 권이란 글자를 만든 옛사람들은 권(權)의 속성을 황새의 품위로 멋지게 그려냅니다.


권력(權力)의 권(權)은 ‘권세 권’에 앞서 ‘저울추 권’이라는 글자 풀이가 사전에 나오는군요. 권세는 알겠는데, 저울추라니 권세와 저울추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저울추는 가볍고 무거운가를 따지는 도구이지요. 권력이 하는 일이 결국은 경중을 따지는 것이군요. 제한된 자원을 경중을 따져 배분하는 일이 정책이지요. 반도체도 중요하고 자동차도 중요한데 조선업을 지금 지원할 것인지 경중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권력이 하는 일이지요. 돈이 되지 않는 예술이지만 그 무형의 가치에 어느 정도 경중의 무게를 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문화가 빡빡한 경제 논리에서 벗어나 여유로울 수 있냐도 권력의 정책에 따라 달라지지요. 물론 그 배분에 쓰일 자원을 어떤 대상에게 어떻게 경중을 따져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가도 권력의 역할입니다.


권력은 휘두르는 것이 아니고 경중을 따져 행하는 것입니다. 쉽지는 않은 일이군요. 권력에 의해 가벼웠던 것이 무거워질 수도 있고, 무거웠던 것이 가벼워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경중을 따지는 것은 쉽지 않지만, 경중은 절대적이지는 않습니다. 나무가 무겁습니까? 가볍습니까? 황당한 질문이지요. 무겁고 가볍고는 비교할 상대가 있을 때나 가능하지요. 나무는 쇠보다 가볍고, 플라스틱보다 무겁습니다. 항상 물건끼리 비교하여 경중을 따질 수 없으니 저울추를 만들어 무게를 재게 되었겠지요.


하지만 잴 수 없는 사회 현안들은 무겁고 가벼운 것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대상도 없고, 직접 측정할 저울추도 없지요. 그러니 결국 권력자의 가치관이란 저울추에 의해 다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자는 권력이란 경중을 재는 저울추를 가집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을 자의로 가질 수 있나요. 쿠데타가 아니고서야 권력을 원한다고 스스로 가질 수는 없지요.


시민교육콘텐츠연구소 강정모 소장은 몇 년 전 페이스북(2014.7.2)에 권력을 받은 자에 관해 이런 글을 남깁니다.


‘권력을 가진 자’라는 말이

우리들의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권력을 받은 자’로 바뀌어질 때

민주주의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권력을 받은 자'라는 말은 권력을 주는 주체를 우선 생각하게 합니다. 권력은 우리 국민이, 그 조직의 구성원이 가지는 것이고, 한시적으로 누군가에게 빌려주는 것입니다. 그 권력을 받은 자는 일정 기간 그 힘을 전체를 위해 대신 쓰는 것에 불과하지요.


선거가 가까이 오면서 많은 사람이 권력을 가지겠다고 나섭니다. 그들이 권력이란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고 저울추 사용권을 잠시 받는 것이란 것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권력이란 단어도 모르면서 권력자가 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고 보니 권(權)이란 글자에 힘세고 무서운 호랑이보다 기품 있는 황새가 적절할 수도 있겠군요.


‘저울추 권(權)’을 사전에서 찾아봤으니 이제 천천히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권력을 오랫동안 가져 한없이 높아지려는 자가 누구인지, 권력을 잠시 받아 낮은 곳에서 겸손히 일할 자가 누구인지….


(2021. 7. 4.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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