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현 Apr 03. 2022

#124 딱 껌딱지만큼

#124  껌딱지만큼


뭐를 하려면 두려움이 많이 생기는 저는 소심한 사람입니다. 아내는 우리 부부가 새가슴을 가졌다고 표현하지요. 저 자신 두려움과 걱정도 많은 사람인 주제에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니 걱정 많은 환자들을 위로하고 토닥거리며 삽니다.

 

올더스 헉슬리가 ‘영원을 이야기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경전’이라고 칭송한 <바그바다 기타>는 함석헌 선생님의 한글 번역본 이후 여러 번역본이 나와 있지요. 저는 정창영 선생님이 풀어 옮긴 책으로 <바그바다 기타>를 접했습니다. 원전이나 다른 번역본을 접하지 못해서 뭐라고 이야기해 드릴 수는 없어도 정창영 선생님의 해설은 저 같은 초심자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었지요. 그의 해석에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크리슈냐는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로 말문을 연다. 아마 영적인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움 없음’이 최고의 덕목이리라.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다름’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두려움이란 내가 아닌 그 무엇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가 참자아이며 모두가 ‘나’라는 통합된 인식이 있다면 두려움이 생길 까닭이 없을 것이다. 영적으로 지고한 경지는 완전한 자유와 평화이다.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런 자유와 평화는 맛볼 수 없다.’


너와 나의 다름,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나와 다름. 그 다름으로 인한 생각에서 두려움이 나오지요.


하나 됨. 나와 너의 하나 됨, 지금의 나와 내일의 나의 하나 됨, 나와 자연의 하나 됨에서는 두려움이 끼어들 자리가 없겠지요.


두려움은 무엇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지요. 두려움은 다른 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그 바람이란 것이 나쁜 마음이 아닐 텐데, 두려움이 발생하여 나를 둘러싼다면 그 바람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지요. 그 바람은 사람을 움직이는 선한 동력이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어떤 것에 집착할 때 우리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건강을 바라는 마음에 집착하면 질병이 걸릴까 두렵습니다. 부자가 될 마음에 집착하면 돈을 벌지 못할까 봐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 집착하면 거절당할까 두렵습니다. 심지어 평화를 이루는 마음에 집착하면 전쟁이 일어날까 두렵지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나 건강하고 싶은 마음은 좋은 마음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나 사랑을 구하는 마음도 나쁜 마음이 아닐 진데,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그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나오겠지요.


집착이란 그것에 달라붙어 있는 것입니다.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접착제처럼 딱 붙어서 안 떨어지는 집착이 문제입니다. 딱 껌딱지만큼 집착하면 어떨까요. 언제든 보기 싫으면 떼어내 버릴 수 있도록 껌딱지만큼만 집착하는 것이지요.  떼다가 조금 껌 자국이 남더라도 나중에 조금씩 떼어내다 보면 벽은 다시 깨끗해질 수 있지요.


마음에 접착제만 쓰지 맙시다. 강력 본드, 순간접착제로 붙이지는 맙시다. 떼어내기 참 어렵고 벽에 자국이 영원히 남잖아요.


껌딱지 붙인 것인데 두려울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껌딱지 떼고 나면 그 벽은 원래대로 깨끗해져 있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니 두려움도 멀어지네요.


그런데 껌딱지 벽에 붙였다가 떼어내어 다시 씹어 본 적 있으세요. 아마 대부분 그런 적 없으실 거예요. 그러니 아예 껌딱지 벽에 붙이지 않고 살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붙여 놓고 살게 되지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거나 나와 너의 하나 됨의 경지는 죽을 때까지 이르기 어려운 경지이니 새가슴 가진 저는 오늘 뭐를 껌딱지 붙이며 살아갈까요.


집착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을 토닥거리는 척하며, 사실은 저 자신 토닥거리기 위해 이렇게 끄적이며 다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집착은 딱 껌딱지만큼.


매거진의 이전글 #123 소리 사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