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는 무엇을 쓰실 건가요?”
첫 번째 책 <뇌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보이네> 원고를 고맙게 받아 준 출판사 분들과 만난 자리였습니다. 책 내용과 출간에 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다가 출판사 주간이 묻더군요. 다음 책에 관해서.
게으른 탓에 오랫동안 미루었던 출간이라 다음 책에 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제 입에서는 ‘고요’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습니다. 첫 번째 책이 열세 글자나 되는 긴 제목이었는데, 다음 책을 낸다면 고요라는 두 글자가 떠오른 것이지요.
고요라는 주제가 오랫동안 제 가슴 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나 봅니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 살면서 고요를 바랐던 게지요.
고요는 평온한 상태입니다.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를 고요라 하지만 사실 고요는 외부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깥 소음이 없는 속에서도 내 머릿속 내부 소리가 쉬지 않고 떠들고 있다면 고요에 이르지 못하지요. 머릿속 소리, 즉 생각은 외부 소음보다 더 큰 내부 소음으로 고요의 상태를 깨는 주범입니다.
세상이 시끄러운 건지 내 마음이 시끄러운 건지 잘 모르지만, 저는 고요를 원하지요.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고요의 공간을 느껴봅니다. 소리와 소리 사이, 물체와 물체 사이, 그 빈 공간에 고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를 피하기보다 소리의 층, 각각의 소리들이 쌓아가는 층들 사이에 고요가 숨어 있지요. 소리의 배경인 고요를 알아차리는 것이 고요를 찾아가는 길이 아닐까요.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떠오르는 여러 시끄러운 생각들을 몰아내려 애쓰기보다 생각과 생각 사이 고요를 느낍니다. 시끄러운 소리들 속에서 고요를 알아차립니다. 고요는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것을 그저 알아차리는 것이겠지요.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바이러스로 세상이 어지러운데, 인간들은 그런 혼란도 부족한지 전쟁을 일으킵니다. 조용히 살던 마을에 포탄이 떨어지고, 고요는 깨집니다. 권력자의 어리석음과 욕망으로 평범한 이들의 삶에서 고요함이 깨집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안타깝지요. 어서 빨리 전쟁터 폭격의 굉음이 그치고 고요히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두 손을 모을 수밖에.
포탄이 날아다니는 다른 나라의 전쟁터는 아니지만, 이 나라에서도 선거 전쟁이 벌어졌지요. 무척 시끄러웠던 선거가 끝나니 이제 좀 조용해지려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쓰잘데 없는 뉴스들로 세상은 다시 시끄러워집니다. 포탄 대신에 욕심의 말 잔치가 벌어집니다. 선거 전쟁이 끝나니 권력을 휘두르는 채찍 소리가 윙윙 댑니다. 하지만 그 시끄러움 속에서도 우리는 고요의 바탕을 봅니다.
고요는 바탕입니다. 고요는 하얀 종이입니다. 하얀 화선지에 검은 먹을 찍은 붓으로 산수화가 그려집니다. 우리는 작품 가운데 검은 붓 자국들에 눈길이 우선 가지만, 우리의 마음은 붓질과 붓질 사이 공백에 머물며 작품의 여운을 느낍니다. 붓질로 꽉 찬 그림보다 먹으로 채워지지 않은 여백의 작품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세상의 시끄러움 속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니 꽤 오랫동안 글 한 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시끄럽다는 핑계 이제 그만 대고, 소리들 사이의 고요를 글에 담아 봅니다. 그저 고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