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싸움이란 글자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싸움은 보고 있으면 씁쓸한 뒷맛만 남게 되지요. 호모 사피엔스 종족의 싸움은 아프리카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싸움보다 지저분한 경우를 많이 겪게 됩니다.
싸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전투구’가 써진 글에서 ‘이’자가 무슨 글자인지 찾아보다 아예 싸움이란 글자를 해부하게 되었습니다. 싸울 투(鬪)는 싸울 두(鬥)와 콩 두(豆), 마디 촌(寸)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먼저 싸울 두(鬥)부터 볼까요. 글자만 봐도 양자가 대립하는 형상입니다. 싸울 두(鬥)는 왕이 두 개가 있으니 왕이 둘이서 싸우는 것이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자 사전 뜻풀이에 이 글자는 왕의 의미는 아니고 싸우면서 머리가 헝클어진 모습을 그린 글자라 합니다. 굳이 왕이 아니더라도 일반 사람이 머리 헝클어지며 싸우는 모습을 그렸다니 재미있지요. 하지만 헝클어진 머리 모양을 왕으로 그려 놓은 것이 어쩌면 중의적이지 않을까도 여겨집니다.
머리 헝클어진 두 사람의 사이 왼쪽 아래에는 콩 두(豆)가 있습니다. 콩 두(豆)는 그릇의 모양에서 나온 글자랍니다. 그릇이 왜 콩이 되었을까요. 그릇에 담긴 콩에서 비롯되었다 하지요. 콩이 담겨 있든 쌀이 담겨 있든 그릇을 뺏으려는 것이 싸움의 목적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 그릇을 무엇으로 뺏으려는 것일까요. 바로 인간이 가장 잘 쓴다는 손입니다. 싸울 투의 오른쪽 아래에는 마디 촌(寸)이 있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아니고 손목이지요. 마디 촌(寸)은 손을 그렸는데 거기에 점이 하나 찍혀 있습니다. 이 점의 위치가 맥박이 잡히는 곳을 나타낸다고 하니 그 옛날 이 글자를 만든 이에게 ‘좋습니다’ 아이콘을 날리게 됩니다. 마디 촌(寸)은 손끝에서 맥박이 잡히는 손목까지를 의미합니다. 길이를 재는 단위로 쓰이지만, 부수로 쓰일 때는 손이란 의미로 주로 쓰인다고 하지요.
해부를 했으니 다시 조립해 볼까요. 싸울 투(鬪)는 손을 가지고 밥그릇을 뺏기 위해 머리 헝클어지게 싸우는 모습입니다. 왕이 큰 대의명분을 내세워 영토를 가지고 싸우는 것도 결국은 밥그릇 싸움이고, 이웃 사촌 간에 싸우는 것도 밥그릇 때문이며, 형제가 부모님 유산을 가지고 싸우는 것도 결국 밥그릇 싸움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밥은 생명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밥그릇 싸움도 소중하지요. 모든 생명체가 밥을 위해 싸우고 일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은 그릇에 담긴 밥도 진흙탕에 빠뜨리고 온몸 생채기에 진흙만 뒤집어쓴 채 싸움이 끝나겠지요.
생명을 위한 귀한 밥의 본질에서 벗어나 욕심만 담긴 밥그릇을 위한 싸움에서 호모 사피엔스 종족은 언제나 벗어날까요. 밥그릇을 손으로 움켜쥐려고 머리 헝클어진 모습의 거친 싸움의 글자(鬪)에서 벗어나서, 밥그릇을 정중히 두 손으로 남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글자를 만들어 낼까요. 아마 그 글자도 이미 있겠지요. 제가 우둔하여 아직 못 찾을 뿐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