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와 세로 세상

- 인터넷 서핑과 책 읽기 -

by 이상현

그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처음으로 인터넷에 접속했을 때 기억입니다. 컴퓨터에 하드 드라이버도 없이, 지금은 없어진 플로피 디스크로 운영하던 시절이지요. 전화기 모뎀을 통해 제 방에 있던 컴퓨터가 "삑~ 끽~"이란 소리와 함께 세계의 다른 컴퓨터와 연결이 되더군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외국의 대학교 사이트에도 접속할 수 있었지요. 지금같이 그래픽 운영체계가 아닌 텍스트로만 운영되던 DOS 운영 체계였습니다. 속도도 너무 느리고 중간에 접속이 끊어지곤 하던 시절, 전화선 하나에 연결된 열악한 네트워크 시대였지요. 인터넷의 ‘인’자가 '참을 인(忍)’자 인(忍)터넷이라는 우스갯말이 돌 정도로 네트워크 속도는 느렸지만, 제가 있던 그 작은 방에서 전 세계와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충격이었습니다.


KETEL이란 PC 통신을 시작으로 천리안, 하이텔 등의 이름이 기억나는군요. 그 후 전화선이 유선 LAN으로 바뀌면서 속도는 빨라지고, 컴퓨터 운영체계도 텍스트 기반에서 윈도우즈나 맥 OS처럼 그래픽 기반으로 바뀌게 되었지요. HTML 기반의 윈도우즈에서 마우스 화살표가 손가락 모양으로 바뀌는 화면의 이곳저곳을 누르면 인터넷의 무궁무진한 자료의 늪에 들어가게 되지요.


DOS 같은 텍스트 운영 체계에서도 인터넷은 무궁무진한 세상이었지만, 글자로만 구성된 화면에서 한 글자 한 글자를 타이핑하면서 층층 트리 구조로 하나하나 들어가는 시스템은 번거로운 점도 있고, 자신이 얼마나 깊이 들어가는지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윈도우즈와 같은 그래픽 운영체계의 인터넷 세상은 손가락 하나로 마우스 클릭만 하면 세상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리고 대부분 처음 자신이 접한 화면이나 주제와는 너무도 멀리 떨어진 인터넷상의 어떤 화면에 자신이 놓여있게 되지요.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간도 많이 흘러가고, 그 흘러간 시간만큼 깊이 있는 자료 검색보다는 산만하고 별 의미 없는 시간만 보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이메일만 확인하려고 컴퓨터를 켰다가 인터넷 쇼핑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학술 논문을 찾으려고 서칭을 시작했다가 연예가 스캔들 기사를 읽으며 대부분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터넷은 왜 우리의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고, 우리의 시간을 의미 없이 흐르게 할까요? 인터넷의 어떤 점이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운 중독성 요인까지 가질까요?


그중 하나의 요인은 아마도 인터넷의 가로 특성 때문일 것입니다. 인터넷을 클릭하다 보면 옆으로 옆으로 퍼져나갑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처음 자신이 있던 주제와는 동떨어진 주제에서 헤매고 있기에 십상이지요. 가로의 특성은 옆으로 퍼지는 특성, 다양하지만 좀 산만하지요.

가로 특성과 반대되는 속성은 무엇일까요. 세로 특성이라 할 수 있지요. 가로 특성처럼 옆으로 산만하게 퍼지기보다 수직으로 곧추서 있는 세로 특성에서 집중의 깊이를 느낍니다. 자료를 모아 놓았다는 것은 유사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모여진 책은 세로 특성이 있다고 할까요. 즉 인터넷처럼 옆으로 산만하게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로 깊이 있게 들어가는 세로 특성을 책은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인터넷을 오래 하다 보면 정신이 산만해지고, 결과적으로 다양하지만 너저분한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지요.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정신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작업이면서, 책장을 덮고 나면 하나의 주제를 깊이 생각하게 되지요.


정보를 취한다는 것은 같지만 이렇게 가로 방식의 인터넷과 세로 방식의 책 읽기는 다양과 집중이란 다른 두 방향의 뇌를 사용합니다. 가로 방식은 손가락 하나로 편하게 클릭만 하면 쉽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보의 늪에서 다소 수동적으로 보낼 수 있는데, 세로 방식은 일정 시간 의도적이고 능동적 집중을 해야 가능하지요. 그래서 책 읽기가 더 힘든 점이 있기도 합니다.


집중해 책 읽기 위해서는 ‘그뤼닝 학습법’을 제안한 크리스티안 그뤼닝의 <책 먹는 독서>에서 배울 점이 있습니다. 그는 독서 초보자들과 독서 고수들의 차이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독서 초보자들은 집중력 지점을 이리저리 옮겨놓으며, 그것을 한 곳에 맞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서 고수들은 뒤통수, 즉 후두부가 불쑥 올라온 부위에 관심을 집중시키면 편안한 각성 상태로 옮겨간다고 하지요. 즉 시야가 넓어지고 눈의 움직임도 원활해지며 의미 단위들을 파악하기가 더 쉬워져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뇌의 구조상 후두엽의 역할은 주로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니 그뤼닝의 이론이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지요.


실제로 책을 읽을 때 눈에 집중하거나 뇌의 전두엽이 있는 앞머리에 집중하기보다 시각적 정보 입력처리를 하는 뇌의 후두엽, 즉 뒤통수에 집중하여 책을 읽으면 좀 더 편하게 집중이 유지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산만한 가로 방식이냐, 좁게 집중하는 세로 방식이냐로 인터넷과 책을 꾸겨 넣어보았습니다. 산만과 집중의 관점에서 보면 세로 방식이 좋아 보이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가로 방식이 장점이 있지요. 우리에게는 가로와 세로, 두 축이 모두 필요합니다. 다만 지금의 인터넷 세상은 가로축이 조금 과하고, 세로축이 부족하다는 점이겠지요.


인터넷의 과다한 가로 세상에서 다소 부족한 세로 세상으로 조금은 옮겨 보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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