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와 가로 세상

- 등산과 정상 -

by 이상현

앞의 글에서 인터넷과 책을 예로 들면서 다양하지만 다소 산만한 가로보다 세로 집중에 대해 강조하다 보니, 세로가 가로보다 더 나은 느낌이 들지요. 하지만 이제 바꾸어 생각해 볼까요.


바다를 왜 갈까요? 시원한 바람을 맞기 위해, 하얀 물결 이는 힘찬 파도를 느끼기 위해,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가을 바다, 겨울 바다, 계절에 상관없이 바다는 마음이 답답할 때 찾고 싶은 일 순위 장소입니다. 넓은 바다를 바라보면 ‘와’ 소리와 함께 가슴이 뻥 뚫리지요. 바다와 하늘로 나누어진 수평선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펼쳐져 있고, 이를 보고 있으면 마음도 시원히 넓어집니다. 바쁜 일과 속에 좁아진 시선이 가로로 확 터지는 느낌입니다.


여행에서 가슴이 시원해지는 순간들은 이렇게 넓게 가로 방향으로 시야가 펼쳐지는 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여행은 이렇게 가로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 아닐까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을 가진 객실은 시야가 막힌 반대편 객실보다 일반적으로 숙박료가 더 비싸지요. 비싼 비용을 내면서도 사람들은 확 터진 전망을 가진 그런 멋진 방들을 원합니다. 그것도 가로로 넓어진 시야를 경험하기 위함이지요.


바다 이야기를 했으니, 산으로 주제를 돌려볼까요. 우리가 산에 오를 때 그것은 세로 방향의 경험입니다. 묵묵히 자기 발 앞을 보면서 좁은 길을 올라가지요. 그러다 산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입니다. 얼굴과 등에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렇게 확 트인 정상에서 첫 마디도 역시 ‘와’ 소리와 함께 막혔던 가슴이 시원히 뚫리지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산 아래 펼쳐진 장관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세로의 시간 후에 산 정상에서 가로의 시간을 잠시 가지는 것이지요.


바다나 산꼭대기나, 갈 때까지 길은 고생입니다. 바다를 찾기 위해 막힌 도로를 지나야 하고, 산에 올라가기 위해 숨도 가쁘게 쉬어야 합니다. 그럼 왜 바다와 산을 갈까요? 그것의 공통점은 바로 가로의 시간을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좁게 집중되는 세로 방향성을 많이 추구하지요. 세로는 깊이가 있고 높낮이가 있어서 조직 구성도 그렇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부도 깊게 집중할 것을 요구하니 세로 방식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세로의 일상을 살다가 여행에서 고정된 시야를 좌우 가로로 확 넓히니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이지요.


수평선과 지평선을 지금 바로 보기 어렵다 하더라도, 지금 눈앞에 있는 모습에서 가로로 쭉 뻗은 가로 선을 찾아보고 그 선에 집중하며 조용히 시선을 따라가 보세요. 그동안 별로 시야를 두지 않았던 좌우 구석도 눈에 들어오지요. 야외에 있다면 하늘과 건물 혹은 산과 경계를 맺는 선을 쭉 따라가 보지요. 천천히 가로로 시야를 돌리다 보면 파노라마 광경처럼 세상의 좌우를 보게 되지요. 가슴도 그 폭 만큼 넓어지고요. 이를 '가로 집중’이라 할까요. 이전에 이야기한 선 집중 중 ‘세로 집중’은 깊고 좁게 집중력을 높여주지만, 가끔은 이렇게 ‘가로 집중’의 시간도 가져보곤 해 보세요. 세상은 내 좁은 시야보다 더 넓다는 것을 깨우치기도 하지요.

우리의 삶의 시간인 나이도 ‘수직’으로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수평’으로 넓혀가는 조화라는 것을 생태사학자 강판권 교수는 <나무 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은 나이를 ‘수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수직으로 생각하면 나이가 한 해마다 한 살씩 축적된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이르면 한 해 한 해를 두려운 마음으로 보게 된다. 반면 나무의 나이는 수평이다. 나무는 수평으로 나이를 먹으면서 몸을 둥글게 만든다. 그래서 나무의 나이테는 진정한 연륜이다. 나무가 어떻게 해서 몸을 둥글게 만들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아는 순간 비로소 인간도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평온하게 살아갈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나무는 수직과 수평, 종과 횡을 막힘없이 살기 때문에 몸을 둥글게 만들 수 있다. 나무의 줄기는 위로 향하지만 뿌리는 아래로 향하고, 나이테는 수평을 뻗는다. 한쪽은 위로 향하면서 다른 한쪽은 아래로 향하는 절묘한 조화가 바로 나무의 삶이다.'


앞글들에서 생각의 시작을 점 집중에서 선 집중으로 사고를 전환하다 보니, 선의 기본 구성인 가로와 세로축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게 되는군요. 사실 한 점이란 것도 결국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그 점입니다. 다양하고 폭넓은 가로 세상과 좁지만 깊은 세로 세상의 조화가 나무의 나이테처럼 우리의 나이테를 만들어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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