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그 사람 있지?

by 이상현

"그 사람 있지?"

"누구?"

"왜 있잖아. 최지우 파트너로 나왔던 일본에서 인기 있는 남자 배우."

"이병헌?" (아내는 이병헌을 참 좋아합니다.)

"아니, '가을동화'인가 '겨울연가'인가 찍었던 배우 말이야. 요새 머리도 길게 기르고……."

"아하. 배용준!"

"그래 배용준이 인터넷 신문을 보니, 촬영 도중 ……."


아내에게 배용준의 이야기를 전해주려 하면, 저는 이런 절차를 밟게 됩니다. (사실 '가을동화'에는 최지우도 배용준도 나오지 않지요. 하지만, 저는 그 두 드라마가 항상 헷갈립니다.) 그래도 이렇게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을 아내가 미리 알아서 이야기해 주면 그나마 우리 부부의 대화는 이어지게 됩니다.

간혹 이렇게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그 커플 있지?"

"누구"

"작년에 결혼한 커플."

"아하, 그 커플. 그 커플이 왜?"

"그 커플이 헤어진대."

"그래 꽤 잘 산다고 들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은 제가 이야기하는 그 커플과 아내가 이야기하는 그 커플이 같은 커플일까 의심스러울 때도 있지요.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의 의자왕이 계백 장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계백아, 니가 거시기해야 쓰겄다." 그 말을 계백은 잘도 알아듣습니다. 우리 부부가 전라도 출신이었다면, 우리는 주로 "거시기 있잖아" "그래 거시기" "거시기가 거시기 했대"처럼 대화를 했겠지요. 우리의 대화 중에 '고유명사'가 점차 사라지고, '대명사'로 대체되면서, 저는 치매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기억이 안 나는 것일까? 환자들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고, 고생하는 전공의들 이름도 잊어버리고, 실습 나온 학생들 이름은 아예 기억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저를 곤혹스럽게 만들지요.


저의 기억력에 점차 자신이 없어지는 어느 시점에 잠시 해외 연수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이때부터 평소에 관심 있었던 노인건강평가와 더불어 치매를 공부하기 시작하였지요. 치매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도 사실 제 노인 환자를 보기 위한 것에 앞서 제 기억력이 걱정되어서가 더 숨은 이유일 것입니다.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나의 기억이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하는 것이었지요. 뇌의 어디인가에 있을 텐데, 그곳을 안다면 잊혀진 기억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했습니다.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이에 대해 알고자 노력했고, 최근에 어떤 것들은 새롭게 정리되는 분야가 있다는 것도 조금은 맛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뇌라는 것은 인간이 결코 전부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세계라는 느낌이 점차 들기도 하지요. 지금 아는 눈곱만한 지식조차 몇 년 후에는 틀렸다고 판명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현재까지 우리 인간들이 이해하는 기억과 뇌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공부하면서 만난 여러 환자들, 그리고 똑똑한 대가들의 잘 정리된 책과 자료들을 접하면서 이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제가 아는 것은 뇌와 기억의 세계 중 극히 일부분이겠지만, 혹시 알겠어요, 저처럼 기억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 중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정말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다한 것이겠지요.


여러분도 혹시 저처럼 '거시기 대화'에 접어들었나요? 그렇다면 함께 우리의 못 믿을 기억과 뇌의 세계에 한 번 들어가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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