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고개를 들어서

by 이상현

#11 고개를 들어서


무엇을 보고 걸어가시나요? 눈이 앞으로 향해 있으니 앞을 보겠지요. 앞을 보고 걸어야 흔들리지 않고 걸을 수 있으니까요. 걷다가 가끔은 멈추어 서서 왔던 길을 뒤 돌아보기도 하죠. 고개 숙여 땅을 내려다보기도 합니다. 발자국 디디는 길가에 풀이 올라오는 것도 보이고 작은 돌멩이도 보이네요.


오늘 고개를 들어 머리 바로 위를 바라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곳에는 하늘이 있습니다. 하늘은 항상 눈 앞에 펼쳐지지만, 눈앞에서 그냥 건물들 뒤로 멀리 보이는 하늘과 고개를 들어 머리 바로 위에 펼쳐진 광활한 하늘은 느낌이 다르네요.


얼마 전 북한산 문수봉에 올랐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고 햇살도 좋아 큰 바위에 벌렁 누웠지요. 눈앞에 드넓은 파란 하늘이 펼쳐졌습니다. 산의 배경으로만 보였던 하늘이 아니라, 하늘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평온한 하늘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하늘을 보는데 굳이 눈에 힘주어 초점을 맞추려 애쓸 필요 없지요. 하늘은 모두 품을 수 있어 그냥 바라보면 됩니다. 눈에 힘을 빼고 하늘을 바라보니 눈이 맑아집니다. 눈이 시원해집니다.


오래전 섬에 의료봉사를 갔다가 밤바다 모래사장에 누워서 하늘을 봤던 적이 있습니다. 불빛 하나 없는 해안가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의 머리 위에 있던 것들이 펼쳐집니다. ‘아, 별이 있었구나. 우리 머리 위에는 별이 있었구나. 하늘에는 별이 있었구나.’ 우주에 펼쳐진 무수한 별 무리 속에 태양계는 하나에 불과하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그때 다시 깨닫게 되지요. 태양이라는 별 주위를 도는 작은 지구라는 행성 한구석에 우리는 살고 있지요. 하늘은 그 별 무리를 다 품고 있습니다.


누가 하늘을 보았는가

(신동엽)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후략)


시인은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했습니다. 두렵고 공경한다는 뜻의 ‘외경’은 하늘을 보면 느껴지는 단어이지요. 우리가 두려워하고 공경할 존재는 높은 회색 구름도 아니고 쇠붙이처럼 단단한 지붕도 아니고 하늘이지요. 넓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작은 존재임을 다시금 압니다.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짓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짓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요. 일본 게이오 대학의 창립자 후쿠자와 유키치의 <학문의 권장>에 나오는 구절이랍니다. 내 머리 위에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발밑에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사람의 머리 위에는 하늘이 있고 사람이 디디고 있는 발밑에는 땅이 있습니다.


사람은 머리를 하늘로 두고 두 발로 땅을 디디고 꼿꼿이 서 있는 독특한 생명체이지요. 인간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이 존재라서 그럴까요. 그 사이가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고 내 존재 이유일 수도 있겠군요.


세상의 어둠이 굳건한 지붕처럼 덮고 있다고 느낄 때, 삶의 무게를 온통 자신의 어깨로 짊어지고 있다고 여겨질 때, 고개 숙이고 땅만 보고 힘없이 걷게 됩니다. 숙인 고개로 어깨가 뻑뻑하다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세요. 뿌옇게 흐렸던 눈도 맑아질 거예요. 굽었던 어깨가 시원해지는 것은 덤일 테고요.


갇힌 공간을 조금 벗어나 고개를 들면 내 머리 위에는 사람도 없고, 지붕도 없고 하늘이 있습니다. 하늘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모든 것 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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