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주어는 왜 집을 나갔을까

by 이상현

#14 주어는 왜 집을 나갔을까


주어가 없습니다. 문장에 주어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에서 간혹 볼 수 있지요. 영어에서는 주어가 없이는 문장이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맨 처음에 오는 것이 주어입니다. 그러나 한글에서는 주어가 없이 문장이 될 수 있지요. 한글로 쓴 글을 영어로 바꾸는 구글이나 파파고 번역기를 돌려보면 한글 문장에 주어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해 주지요. 한영 번역기는 주어가 없는 한글 문장을 번역기 스스로 주어를 가져다 붙여 엉뚱하게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법적 구성요소는 무엇일까요? 주어, 목적어, 서술어, 동사, 형용사, 부사, 접속사.... 여러 문장 요소가 있지요. 무엇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요. 좋은 문장을 만들기 다듬기 위해서는 각 문장 요소 하나하나가 다 중요할 겁니다.


그러나 문장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문장의 가장 중요한 요소, 아니 중심요소가 무엇인지는 극명합니다. 문장은 다름 아닌 주어를 꾸미는 글일 뿐입니다. 주어가 앞에 딱 자리 잡고 있고 그 주어를 꾸미기 위해 여러 가지 꾸밈말이 붙어있는 것이 문장일 뿐이지요. 주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누구와 하는 것인지 말하는 것이 문장입니다. 그러니 모든 언어에서 주어가 대부분 문장의 앞에 자리 잡습니다. 다른 문장 구성요소는 그 주어를 꾸미는 치장에 불과하지요.


그 중요한 주어가 왜 한글에서는 간혹 빠지는 것일까요. 그렇게 주어가 빠져도 우리는 다 알아듣습니다. 아무 불편함이 없지요. 오해도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주어가 빠지는 것이 흔해지다 보니 주어를 중요시하지 않는 습성도 생깁니다. 주어를 숨기고 마는 말의 형태도 생깁니다. 수동태 문장도 그런 형태이겠군요. 수동태 문장에서 주어는 숨기 쉽습니다. 그 문장을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선두 부분이 사라지고 맙니다. 수동태 문장은 그래서 피해야 할 문장으로 꼽기도 하지요. 능동태 문장을 가급적 쓰라는 것은 대부분 글쓰기 지침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한글에서 주어가 왜 자주 사라지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주어가 앞에서 문장을 지휘해 나가야 할 텐데 왜 사라질까. 혹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책임성의 문제일까. 사회적 압박 구조 속에서 주어가 숨어버린 사회성의 문제일까. 지금 이 글에서도 주어가 없는 문장이 여럿, 눈에 띕니다. 사라진 주어를 불러와야겠습니다. 그리고 물어봐야겠습니다. 왜 집을 나갔느냐고. 당신이 주인인 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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