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나라는 점에서 나와서

by 이상현

#23 나라는 점에서 나와서


불쌍한 마음이 든 적이 있지요. 어떤 상황에서 그런 마음이 들까요? 왜 그런 마음이 들까요?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누구에게 그런 마음이 들까요?’ 여러 가지 질문 중 왜라는 의문사가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누구라는 의문사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누구?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 마음이 아픈 사람,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 누구? 아니 다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한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가장 불쌍한 마음의 초점 대상이 될 수도 있겠군요.


자신이란 존재는 희한해서 왜 그리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봤자, 피부 안 작은 덩어리인데, 우리는 그것에 매우 집착하지요. 피부 장벽 안에 존재에 그리도 집착하게끔 만들어 놓은 것 보면 신기합니다. 모든 갈등의 원인이 그 피부 안 자기에 집착하는 데서 옵니다. 모든 고민의 원인이 그 피부 안 자기에 갇혀 있는 데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피부 안에 갇혀 있으려 하지요. 그 굳건한 성을 지키려 하고, 그 성문을 여는 데 주저합니다. 그 성벽을 허물어야 자유로울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지요. 아니 그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지요.


프로이트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가 설명한 세 가지 단어는 우리 모두가 잘 압니다. 이드, 에고, 슈퍼에고. 그럴싸한 설명이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동물과 같은 이드, 신과 같은 슈퍼에고. 그리고 그 중간적 존재인 에고. 에고를 자아로 해석하면서 여러 혼돈이 옵니다. 에고를 제대로 지키는 것이 흡사 나를 제대로 지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 단어, ‘에고’가 우리를 옭아맵니다. 흔히 자아를 찾자. 자아를 지키자, 등등 여러 가지 지키고 찾아야 할 것으로 자아, 에고를 설명합니다. 자아가 깨졌으니 자아 힐링도 해야 한다고 하지요. 자아, 매우 좋은 것, 지켜야 할 것, 다치면 안 되는 것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진짜 그런가요?


그 지켜야 할 에고, 자아라는 놈 때문에 우리가 끌려다니는 것은 아닌가요. 자아를 지켜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자아를 지키려 애쓰기 때문에 우리는 고민과 낙담과 갈등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요. 자아라는 것이 뭐 대단한 것 같지만, 바로 피부라는 실체와 맞닿아있다. 바로 피부가 자아일 수도 있겠네요. 피부가 자아의 벽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피부 자아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 피부 자아를 깨뜨릴 수 있다면 진정한 자유로움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요. 영역이 사라진 자유, 그 자유는 나와, 나처럼 세상에 던져진 타인이란 존재와 연결되고, 앞에서 꼬리 흔드는 강아지와 연결되고, 시원한 그늘을 주는 나무와 연결되고, 끝이 없는 푸른 하늘과 연결됩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나를 고집할 때 생깁니다. 자기자비, 중요한 개념일 수 있습니다. 나에 대한 연민을 가지는 것이 시작일지 모릅니다. 한없이 약하고 깨지기 쉬운 나라는 존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아라는 성에 갇히는 것이지요. 자비, 연민, 사랑은 불쌍하고 약한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서 내 앞에 있는 존재, 내 옆에 있는 존재, 내 뒤에 있는 존재도 마찬가지로 불쌍하고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인식의 차원이 아닐 수 있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 즉 타인자비로 확장될 때 불쌍하고 힘없는 나라는 존재는 마찬가지로 나와 같이 약한 다른 존재와 연결되며 큰 존재 속에 함께함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점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점으로 우주는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점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그 선이 연결되어 면이 되며, 그 면이 연결되어 공간이 이루어지고, 그 공간이 시간과 만나 4차원이 됩니다. 그 이후 여러 차원이 있다고는 하나, 제 작은 머리로는 4차원 조차 제대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제가 그릴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이 3차원 공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겨우 억지로 4차원을 상상하려 애쓰는 것일지 모릅니다. 어쨌든 그렇게 무한의 개념으로 나아갑니다. 상상할 수 없는 차원, 그러나 다시 돌이켜 생각하면 그 시작은 작은 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점, 정의상으로는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상상 속 개념입니다. 우리가 보는 점은 이미 면적을 가지고 있고,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점의 개념은 그냥 점이지요. 면적과 높이가 없는 0차원의 개념. 그 작디작은, 실제 개념으로는 없는 존재인 점에서 연결과 연결되어 선과 면과 공간과 시간과 무한이 탄생합니다.


점에서 벗어나 볼까요. 점에서 벗어나 다른 점을 만납니다. 나라는 점은 연결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일지 모릅니다. 나라는 점의 존재 의미가 곧 연결이지요. 이제 연결해 볼까요. 점에서 나와서, 자아라는 허구의 장벽에서 벗어나 선을 긋습니다. 면을 만듭니다. 공간을 만들고 시간을 만들고 무한에 접합니다. 나라는 점에서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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