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헌식 그릇에 물 담으며
TV가 없던 시절 우리는 무엇을 보며 살았을까. 휴대폰이 없던 시절 우리는 무엇과 연결되어 살았을까. 페이스북이 없던 시절 우리는 누구와 이야기 나누며 살았을까.
시간은 과거로 잊혀지며 흐릅니다. 이런 것이 없던 시절에도 우리는 무엇인가 연결하며 살았겠지요.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면 지금 이것들도 모두 바뀌거나 사라질 텐데 그때 우리는 무엇과 연결되어 살아갈까요.
몇 년 전 봄이 오는 길목에 남도 여행을 아내와 떠났던 적이 있습니다. 어떠한 인연으로 일산에서 광주로 겸직 업무를 맡게 되어 근무 시작 전 남도를 만나고 싶었지요. 여행 중 만난 순천만 갈대밭 일몰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슴에 고요히 남은 곳은 불일암이었습니다. 불일암은 사전 계획에도 없이 우연히 발길 닿은 곳입니다.
순천에는 유명한 절이 있습니다. 바로 송광사이지요. 통도사, 해인사와 더불어 순천의 송광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이라 불리는 큰 사찰입니다. 특히 송광사는 큰스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해서 승보사찰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절이니 순천에 도착한 다음날 바로 찾아갔지요.
송광사 가는 길 우연히 샛길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간도 여유가 있어 그 샛길로 접어들었지요. 길이 참 좋다 싶을 때쯤 대나무 숲을 만납니다. 대나무 숲길을 걷다 보니 불일암이 나타났습니다. 작은 공간이지요. 그곳에 법정 스님이 머무셨더군요. 아무 정보도 없이 찾았던 길에서 법정의 흔적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법정이 만들어 앉았던 작은 나무 의자가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그 의자에 앉아 그는 나무를 보고 있었겠지요. 법정이 머물던 불일암에 머무르며 법정과 조금 더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커다란 사찰 송광사보다 우연히 만난 작은 불일암이 더 가슴에 오래 남았지요.
시간이 흐릿하게 지워놓은 불일암을 며칠 전 영상으로 다시 접했습니다. 살아계시던 법정의 모습을 영상은 담고 있었지요. 불일암 그가 머물던 방안에는 방석 하나와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이 전부입니다.
"주거공간이 단순해야 어떤 광활한 정신 공간을 즐길 수 있어요. (...) 아무것도 없는 빈방에 있으면 전체적인 자기, 온전한 자기를 누릴 수가 있고 (...) 텅 빈 상태에서 충만감을 느끼는 거예요."
불일암에 돌아온 법정은 ‘헌식’을 하더군요. 헌식(獻食). 밥을 드린다, 즉 먹을 것을 내어놓는 행위이지요. 작은 그릇에 먹을 것을 올려놓고, 또 다른 그릇에 물을 담아 자연에 내어놓습니다. 자연이 내려와 식사를 합니다. 작은 새가 날아와 물을 먹습니다. 그렇게 법정은 자연과 새와 연결되어 살고 있더군요.
법정은 70년대 중반 전남 송광사 산자락에 불일암을 짓고 머물다 90년대 어느 날 강원도 화전민이 살던 오두막으로 거취를 옮기지요. 아무에게도 그곳 위치를 알리지 않고 노승은 혼자 그곳에서 보내셨지요. 전기도 없는 곳에서 머물며 그가 접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고독에는 관계가 따르지만, 고립에는 관계가 따르지 않는다.”
별과 고요. 아무것도 없지만, 그는 그곳에서 무엇인가와 연결하며 살았을 겁니다. 그는 헌식을 하며 자연과 함께 식사하셨겠지요.
수십 년이 지난 후 세상은 또 변하여 지금 보는 텔레비전과 휴대폰도 많이 바뀌어 있겠지요. 페이스북이 그때까지 있을까요. 모르지요. 하지만 아마 그때도 연결하며 살아갈 겁니다. 자기 자신과 연결도 하고, 자기 밖의 세계와도 연결하며 살아갈 겁니다.
언젠가 불일암을 다시 가겠지요. 가지고 있던 먹을 것 조금 떼어놓고 누군가 내려오길 기다리겠지요. 혼자 있어 고독하지만 연결되어 고립되지 않은 상태로 고요히 내려온 자연을 바라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