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고요

by 이상현

#46 고요


소리가 없음. 무음. 소리가 나지 않는 상태. 소리를 내지 않는 상태. 그 상태 속에 내가 있다. 아니 그렇지 않을지 모른다. 침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머릿속 소리와는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은 혼잣말로 허공에 대고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면 미친 사람 취급을 한다. 환청은 조현병 환자에게 흔한 증세 중 하나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머릿속 어떤 실체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실체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실체가 아닌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속에서 침묵한다. 고요를 느낀다. 고요라 하더라도 완벽한 무음 상태는 아니다. 바람 소리가 들릴 수도 있고, 새소리가 들릴 수도 있고, 어디에선가 소음이 들려오기도 한다. 완벽한 무음이 없는 것처럼 완벽한 소음도 없다. 소리와 소리 사이의 공백, 그 공백은 침묵하고 있다. 고요한 상태다.


사람들은 하얀 종이에 검은 붓으로 그린 그림을 볼 때 검은 선을 보지만 더 많은 부분은 하얀 여백일 수도 있다. 여러 물건으로 꽉 차 보이는 공간이지만 텅 빈 곳이 그래도 가장 넓은 부분일 수 있다.


우리는 작은 부분에 눈이 가는 습관을 언제부터 익히게 된 것일까. 하늘에 구름이 한 조각 떠 있으면, 구름에 눈이 가듯이. 하지만 하늘은 구름보다 훨씬 넓게 펼쳐져 있다.


고요. 내 밖의 시끄러운 소리나 내 안의 쉬지 않고 재잘대는 소리. 그 소리들을 잠시 물리치고, 아니 물리치지 않고 같이 머물면서 고요를 느낀다. 소리와 소리 사이, 그 틈새의 고요를 느낀다. 생각과 생각 사이의 고요를 느낀다. 고요는 무엇들의 사이이다. 고요는 틈새이다.


그 틈새를 들여다보자. 아주 잠시의 틈새, 그 틈새를 들여다보면 그 틈새가 조금씩 조금씩 늘어남을 알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틈새가 조금씩 벌어져 고요한 공간을 이룬다. 그 고요의 공간에 머문다.


침묵은 어렵지만, 작은 고요의 틈새를 들여다보는 것은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다. 침묵을 지키려는 애씀이 아니라 그저 바라봄, 고요한 틈새를 애쓰지 않고 바라봄. 거창하게 무위라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바라봄. 그 바라봄이 고요에 더 가까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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