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개가 짖는 소리
‘개소리하지 마.’ 개소리는 개가 짖는 소리이니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라는 것이지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이에게 막말로 구박할 때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듣는 인간이 못 알아들을 뿐이지 개도 뭔가 의사 표시를 위해서 소리를 내겠지요.
‘깊은데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가 짖어도 법문이다’
- 이철수 ‘개소리’ -
판화가 이철수는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소리가 법문이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그렇지요. 법문이 뭐 있겠습니까. 그 소리에 온 마음 다 열고 들으면 법문이겠지요.
개소리가 개소리지, 개소리가 어떻게 법문이 되나요. 이해하기 어려워 ‘개소리도 법문이다’라는 말을 바꾸어 봤습니다. ‘법문도 개소리다.’ 아, 말이 너무 거칠군요. 조금 풀어봅시다.
‘마음을 닫고 들으면 법문도 개 짖는 소리다.’
이철수의 ‘개소리’를 거꾸로 적어보니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은 이해가 가는군요.
마음을 닫고 있으면 개가 짖어도 들리지 않지요. 마음을 닫고 들으면 법문도 개가 짖는 소리와 다를 바 없지요. 법문만 개소리가 아니고, 성경도, 불경도, 위대한 고전도 모두 마찬가지지요. 어떤 이는 졸면서 듣고, 다른 이는 건성으로 듣고, 옆에 있는 이는 목소리만 듣고, 앞에 있는 이는 단어만 듣고 있다면 법문이 귀에 들어오겠어요.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데 어떤 소리가 들리겠어요.
마음이 닫혀있다면, 개가 짖는 소리는 의미 없는 배경에 불과하겠지요. 나와 아무 관계 없고 내가 관심 기울일 필요 없는 배경 소리. 하지만 그 배경이 없이는 전체가 없지요.
마음을 열고 들으면 바람 소리도 법문이고 빗소리도 법문이 될까요.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온전히 느끼고, 비 오는 날 옷 젖지 않기 위해 우산을 챙기기에 앞서 빗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눈을 감고 소리를 듣습니다. 눈으로 보느라 정신 팔려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립니다. 개가 짖는 소리도 들립니다. ’개소리하지 마’라고 구박할 것이 아니라 ‘개소리도 제대로 들어봐’라고 해야 할까요. 그 개 짖는 소리에 법문이 담겨 있을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