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당당하게 자기 검열
그는 당당합니다. 그는 유쾌합니다.
그는 당당하기 때문에 유쾌합니다.
배우 윤여정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만큼 당당합니다.
“나는 최고 그런 말이 참 싫어요. (...)
너무 1등, 최고 막 그런 거 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우리 다 최중 되면 안 돼요?
그냥 같이 살면? (...)
최고가 되려고 그러지 맙시다, 우리.
그냥 최중만 되면서 살면 되잖아.
우리 다 동등하게 살면 안 돼요?
이러면 나 또 사회주의자가 되나?”
최중? 취중도 아니고 최중?
최중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봐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최중이란 단어가 있더군요.
그러나 한자어와 뜻이 달랐습니다.
사전에 있는 최중(最重)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그가 말한 최중은
최고가 아니고 최하가 아니고
최중(最中)입니다.
위아래로 구별하지 않고
가운데, 그것이 최중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일등 할 필요 없다. 중간만 해라.”
그 당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적극성이 없는 삶의 태도로 느껴졌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윤여정에게 다시 듣습니다.
그는 당당하지요. 그의 말은 유쾌합니다.
그 유쾌함은 그의 당당함에서 나오지요.
최중이란 새말도 그 당당함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당당한 그도 안타깝게 자기 검열을 합니다.
그의 말 끝머리에 ‘이러면 나 또 사회주의자가 되나’ 중얼거립니다.
우리 사회는 홀로 최고가 아닌
함께 중간을 추구하면
무슨 주의자나 무슨 색깔로 덧칠 하지요.
자기 검열은 필요합니다.
자신이 내뱉는 말이 어떤 이의 가슴을 후비는 칼이 되지 않도록
자기 검열을 하는 것은 배려입니다.
하지만 자기 생각으로 자신이 위협을 받지 않을까
사전 검열해야 한다면
그 사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자기 검열이 담고 있는 두 가지 뜻에서
이제 타인을 위한 배려를 담은 자기 검열 외에는
사전에서 사라질 날이 오겠지요.
그의 끝말은 무의식 자기 검열에서 나온 것이지만
우리의 젊은이들은 사상으로 자기 검열은 하지 않고 살아가겠지요.
최고나 최하가 그렇게 많이 쓰였으니
이제 최중이 널리 쓰일 때도 되었지요.
그의 최중이 당당하게 사전에 실릴 때는 언제일까요.
그때는 최중이란 단어를 말하고도 자기 검열하지 않는 사회가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