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개인주의와 나무, 그리고 물

by 이상현

#58 개인주의와 나무, 그리고 물


당신은 개인주의자입니까? 무슨 무슨 주의자라는 것은 사람을 범주화시키는 것이니 좋은 것은 아니겠지요. 아니 한 사람을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피해야겠지요.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으면서 개인주의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개인이 우선이냐, 조직이 우선이냐는 구태의연한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개인주의는 이기주의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식상합니다. 그런데 개인은 무엇일까 그냥 생각이 듭니다.


창문을 바라보니 나무가 있습니다. 사실 나무들이 있습니다. 나무는 한 그루의 나무이지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모여 숲을 이루지요. 나무가 우선이냐, 숲이 우선이냐가 무슨 의미 있는 논쟁거리이겠어요. 그냥 나무가 태어났고, 주위에 나무들과 어울려 숲이 되어 있는 것이겠지요. 나무 하나 서 있는 것도 그럴싸하지만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는 것도 보기 좋지요. 사람 사는 것도 그런 것이겠지요.


나무가 모여 있는 숲을 보다, 물을 생각해 봅니다. 물은 하나인가 여러 물이 섞여 하나를 이루는 것인가. 내가 지금 보는 이 물은 어디에서 온 물인가. 저 산 위에서 내려온 물인가, 이 산에서 내려온 물인가, 아니면 그저 어느 저수지에 있든 물인가. 물은 그렇게 개인과 전체를 구분할 수 없지요. 그냥 물일 따름이지요. 그래서 선인들은 물을 그렇게 달리 보았나 봅니다.


나무 한 그루는 개인이고 나무가 모인 숲은 전체라는 구분조차 필요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개인주의냐 아니냐는 질문조차 부질없는 것일지 모릅니다. 나무는 한 그루도 소중하고 그것이 모인 숲도 소중하지요. 그 숲을 지키는 것은 그냥 공허한 개념이 아니라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소중히 지키는 것이 진짜 지키는 것이겠지요.


나무 한 그루 살리기 위해 물을 줍니다. 하늘에서 물을 줍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메말라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나무는 굳건히 서 있습니다. 목이 탈 텐데도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서 있습니다. 땅속 깊고 깊은 곳에 수분이 조금 남아 있을까요. 그것으로 목을 축이면서 버티고 있는 것일까요. 땅속 깊은 곳에는 서로와 서로의 뿌리가 엉켜 있을 터이니 내 담벼락 네 담벼락 나누지 않겠지요. 물론 최소한의 영역은 나뉘어 있겠지만, 땅속 어느 곳에는 서로의 뿌리가 살을 맞대고 살아가겠지요.


개인주의자도 물을 마십니다. 개인주의의 목마름의 해소는 전체 목마름의 해소에 조금 기여를 합니다. 목마르지도 않은데 물을 마시면 누군가는 물을 마시지 못하지요. 물이 많지 않으면 두 모금 마실 물을 한 모금만 마시고 옆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미덕이지요. 그렇게 살아갑니다. 자기에게 온 물을 목마르지도 않은데 벌컥벌컥 마시고 흘려서 누군가 목 타게 남겨 놓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그 정도만 배려해도 개인주의는 받아들일 수 있는 개념이지요.


개인이다 전체다, 애초에 그런 구분조차 없었던 게지요. 제 몸 하나 구성하는 것에 얼마나 많은 조각조각이 섞여 있는 것일 테니. 피부로 경계 지어진 존재에 모든 것만 걸지 않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피부 안 존재를 소중히 대하지만, 그 경계도 원래부터 있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 아니라는 것 하나 가끔 알아채고 산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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