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나는 단수인데 나는 복수이다

by 이상현


#59 나는 단수인데 나는 복수이다


저는 쪼잔합니다. 사람이 쪼잔하지요. 쪼잔해서 별로 날카롭지 않은 것에도 상처 입어 가라앉고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별일 아닌 작은 것에도 걱정하고 불안해합니다. 일할 때도 쪼잔해서 작은 것에 얽매여 진도가 잘 안 나가기도 하지요.


쪼잔하면 쪼잔한 데로 살면 되지요. 세상에는 쪼잔한 사람이 잘하는 세세한 일도 있고 그렇기에 쪼잔한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지요. 제가 하는 의사라는 직업도 쪼잔해야 환자 보는데 유리한 점도 있지요. 너무 대범해 덜렁거리면 놓치는 것도 많거든요. 그렇기에 의학 교육은 쪼잔하게 한 번 더 확인하고 한 번 더 생각하며 환자 보도록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그 교육을 받은 탓에 더 쪼잔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교육 탓인 것 같지는 않군요. 그냥 제가 쪼잔한 것이겠지요.


그냥 그렇게 쪼잔하게 쪼잔한 장점 살려 가며 살면 되는데 문제는 어떨 때는 쪼잔한 일은 하기 싫고 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니 그 간극이 사람을 힘들게 할 때도 있지요. 그러고 보니 저는 쪼잔하면서도 어울리지 않게 방향 잡고 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합니다. 오히려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내용 짜는 데는 젬병 같습니다.


저는 부드러운 성격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까칠해지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지요. 저 안에 그 무서운 불이 어디에 숨어있었나 싶게 큰불을 지르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전공의들 수련할 때도 그런 모습이 가끔 보입니다.


저는 꽤 내성적입니다. 하지만, 간혹 나서기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여럿 있는 것보다 몇 명과 함께 있거나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지요. 분명히 꽤나 내성적인데 가끔은 그렇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학생 때 과 응원단장을 했습니다. 내성적 제 성격에 전혀 맞지 않는 역할인데 예과 때부터 본과 때까지 응원단을 했네요. 제가 봐도 좀 이상합니다.


저는 게으릅니다.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보낼 때가 많지요. 그런데 어떤 때보면 꽤나 부지런하게 보입니다. 게으른 것이 천성 같은데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부지런한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하지요.


제가 쪼잔한지 부드러운지 내성적인지 게으른 건지 저 자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이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에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


'가시나무' 노래는 이러한 나를 잘 그려줍니다.


나는 단수인데 나는 복수입니다. 덕성여대 심리학과 김정호 교수님은 "내 마음은 사회다"라며 내 마음에는 여러 '나'가 함께 사는 마음 사회 관점을 제시합니다.


마음 사회에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호시탐탐 고개를 들고 나서고 싶어 하는 여러 ‘나’ 중 어떤 ‘나’를 불러서 하루하루, 아니 각각의 시간 살고 있지요.


자주 불러내 살아가는 내가 결국 나의 가장 근사치가 될까요.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 마을에 사는 여러 ‘나’들의 존재도 인정해야겠지요.


오늘은 어느 나를 불러내 함께하실 건가요. 내 속에 있는 여러 ‘나’는 괜찮은 나가 많습니다. 쪼잔한 나도, 대범한 나도 적절할 때 불러내 함께한다면 다 괜찮은 놈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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