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인생은 무엇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타인의 삶에서라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by 이상훈


처음 제목을 외갓집으로 달고 고민에 빠졌다. 역전앞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외갓집을 외가라고만 하면 무언가 빠져있는 완성되지 못한 좀 강렬하지 못한 그런 느낌이다.


나의 외가는 충남 예산의 신례원 궁평리라는 곳이다. 밀양 박 씨 집성촌이다. 인근에 박 씨 성을 가진 인척들이 많이 사셨고 몇 대에 걸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박 씨 선산에는 많은 조상님들의 묘비가 열을 지어 세워져 있다.
말씀이 없으시고 마냥 사람 좋으셨던 외할아버지와 조금은 극성스러우신 외할머니 그리고 큰 외삼촌과 큰 외숙모, 외사촌 다섯 명 등 모두 9 식구가 한 집에 살았다. 지금의 우리 가족은 독립된 다섯 가구가 다 모여야 겨우 10명이 조금 넘는데 말이다.
큰 외숙모의 하루 일상을 들여다보자.


(지금 큰 외숙모께서는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는다. 그리고 당시엔 내가 너무 어렸기에 외숙모의 생각이나 가정 내에서의 활동을 전부 정확하게 수치화할 수는 없다. 다만 기억을 더듬어 하루 활동량을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초등학교 1-2학년이었던 시절 외가에는 나와 동갑인 여자애 한 명 그리고 중학교에 다니던 형님 한분과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님 등 학생이 3명 있었다. 외숙모의 나머지 두 자제분은 외지에서 경제활동을 하시던 때였다.


직접화로식 난방이라 매일 아침이면 외할머니의 큰 아드님인 외숙이 멀리(대략 4킬로미터정도) 간양리 쪽 야산에서 땔감나무를 해오시고 이 땔감나무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기거하시는 건넌방에 군불 겸해서 소 여물을 끓인다.


같은 시간 큰 외숙모는 아침식사 준비에 한창이신데 할머니는 거의 외숙모의 식사 준비를 돕지 않고 동네를 한 바퀴 도시거나 곰방대를 물고 화투로 운수를 떼며 소일하는 것이 다반사셨었다.


외숙모 댁 부엌은 부뚝막 하나를 중심으로 대단히 큰 무쇠솥이 2개 걸려 있었고 국을 끓이는 용도로 쓰이는 작은 무쇠 솥이 하나 더 걸려있었다. 아궁이는 추정하건데 대략 2개정도 였었지 싶다. 그 당시 대부분가정의 부뚜막에는 아궁이가 두개 있었다.
하나의 아궁이는 큰 무쇠 솥과 작은 무쇠 솥에 열을 전달하고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이는 데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물 끓이는 큰 무쇠솥과 연결되어 있다.
밥을 짓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 나무 땔감을 아궁이에 넣어 불을 지피고 일정한 간격으로 솔나무 가지나 칡넝쿨 등을 꺾어 넣고 화력이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애를 쓰신다. 너무 불이 세도 밥에서 불내가 나거나 타버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1시간 가까이 시간이 흐르게 된다. 국과 밥은 동시에 진행이 가능하니 시간을 합산하기로 하자. 그리고 학교에 가는 학생이 있으므로 도시락을 만들어야 했다. 양은으로 된 커다랗고 널찍한 형태의 도시락통 말이다.


반찬은 김치와 지난해 가을 담근 동치미 무김치와 우거지김치 그리고 멸치 볶음, 호박나물, 투거리에 담아 밥솥에 쪄낸 계란찜 등이 보통이다. 여름에는 오이냉국이 맛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말한 찬류가 각각 3벌 이상씩 필요했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4인용 밥상을 2개, 3인용 밥상을 한 개 이상 차려내야 해서였다. 가끔 인근에 살고 계시던 둘째 외숙이나 셋째 외숙이라도 오시면 더욱 분주해지고 외할머니의 핀잔도 많아진다. 반찬 만드는 시간을 보자 햇김치 외에는 대부분 데치거나 끓여야 하는 것들이다. 요즘과 같은 버너나 렌지류가 없으니 시간이 요즘보다 엄청 많이 걸렸을 것 같다. 요리시간을 줄이기 밥솥에 넣어 삶아서 무치는 경우가 많다. 데칠 시설이 충분하지도 않고 시간도 없기에 말이다. 그래서인지 밥솥에 함께 넣어 데칠 수 있는 콩나물이 가장 흔한 나물류 반찬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추 밀가루 무침, 가지무침류도 매일반으로 밥솥에서 별도의 그릇에 담아 데친 후 무쳤을 것으로 보인다.


무쇠 솥뚜껑은 무게가 만만치 않게 나가기도 하고 열전달과 열 유지가 잘돼 밥이 뜸이드는 시간에 밥솥에 넣었던 나물류 그릇을 빼내기 위해선 엄청난 열을 감수해야 하고 솥뚜껑을 들 수 있는 힘이 필요했을 것 같다. 조리에 필요한 물은 부엌 바로 옆 수돗가에 가서 물을 펌프로 퍼올려 사용했다. 겨울엔 꽁꽁 얼어붙으니 사용하기가 만만치 않았겠다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

나물을 식히고 된장이나 고추장 그리고 마늘과 깨, 들기름 등을 넣어 나물을 무치고 하면 대략 20~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누군가가 옆에서 도와주었으면 하지만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혼자 힘으로 마무리 하신 것 같다. 당시 다른 집 큰 며느리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생선을 굽기 위에선 물을 끓였던 무쇠 솥 쪽 아궁이의 불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굽느다.


한번 굽는데 20-30분 정도로 3마리씩 3번은 구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학생이 3명이나 되는 집에선 밥을 정해진 시간에 먹어야 학교에 늦지 않게 갈 수 있다.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간혹 반찬 가짓수가 늘어나는 날이면 마음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식들과 학교에서 별 사고는 치지 않았는지 대화를 나눌 시간 조차 물리적으로 허락되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아침을 준비하는데 만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밥과 국을 푸고 나면 무쇠솥 바닥에 깔린 누룽지가 남는다. 그냥 주걱으로 걷어 올려 간식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입맛이 없는 외할머니를 위해 누룽지탕을 만들어 드리고 숭늉을 담아내야 겨우 아침식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가 시부모되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중간중간에 반찬 요청이나 그릇 등을 찾으시면 편안히 식사도 못하시고 대청마루와 부엌을 오가신다. 식사 후의 밥상을 보자. 밥그릇과 국그릇이 각 9개요, 숭늉 그릇 또한 9개다. 여기에 3개의 밥상에서 나온 반찬 그릇이 각 4-5개라고 보면 설거지를 해야 하는 그릇 수 또한 40개에 가깝다.


점심 준비는 또 어떤가! 밥을 새롭게 짓기 위해서는 무쇠솥 바닥을 헹구어 내야한다. 적어도 무쇠솥에 대여섯 번의 물 붓기와 퍼내기가 반복된. 이렇게 대충 설거지를 끝내면 대청에 있는 괘종 시계는 9시를 가르킨다.


보통 아침식사를 끝내면 매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걸레를 빨고 옷을 세탁하기 위해 집 앞의 빨래터를 향한다. 빨래가 끝날 때쯤이면 다시 점심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 된다. 학교에 간 3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6명은 점심을 먹을 것이므로... 이때는 대략 간소한 식사가 불가피하다.
점심식사 끝나면 대략 오후 1시 30분을 지나게 되는데 이후에는 저녁밥과 내일 아침 조반으로 쓸 반찬을 준비한다. 나물을 다듬고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사 오거나 등짐장수들이 가져오는 생선류를 사기도 한다.
반찬을 만들 준비가 끝나면 안방, 윗방, 건넌방 2개 마루의 청소를 해야 한다. 그나마 마당은 외사촌 형이나 큰 외숙이 맡아해 주신다. 오후 5시가 되면 큰 솥에 물을 끓이고 아침에 했던 식사 준비가 다시 시작된다. 가족이 모두 둘러앉는 6시 30분 정도가 되면 저녁을 먹고 아침에 나온 양과 비슷한 설거지를 해야 한다. 가족들이 식사를 끝내고 외숙모가 데워 놓은 물로 몸을 씻고 나면 저녁 9시가 된다.
9시가 돼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빨랫줄에 걸린 옷들을 걷어다가 차곡차곡 정리해 주는 일과 터지고 찢어진 옷을 깁워야 한다.
노동도 이런 노동이 없다. 새벽 다섯 시부터 저녁 열 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무려 19시간 가까이 허리 한 번 못 펴보고 일을 하셨다.


신행이후 친정에는 가보셨는지 결혼 이후 그리운 형제자매를 어디에서라도 본적은 있는지 긴 한숨이 쉬어진다.


그렇게 한 세월이 며느님을 맞이하기 전까지 30년이셨다. 그리고 눈이 소리 없이 휘날리던 어느 추운 겨울 날 귀천하셨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하얀 눈 내리던 그날 쓸쓸히 떠나셨다. 그날 나는 어머니의 울음소리 더 애닯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