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비 story 1

어린 시절 비오는 날의 구들장은 세상 무엇과도 바꾸기 싫었다.

by 이상훈


유리창 너머 빗물을 밟고 지나가는 차들의 괭음 소리가 요란하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아침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도 버겁고 학교나 직장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진다.


어린 시절 나는 밤사이 비가 내린 날 아침이면 얇은 담요로 몸을 돌돌 말고 온돌 방바닥의 따뜻한 온기와 방안의 차갑고 쾌적한 공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선잠을 좋아했다.


그 즐김은 오래가지 못했다. 밥을 먹으라는 아버지의 큰 소리가 한 바탕 방안을 훑고 지나가면 추운 듯했던 공기와 따뜻한 구들장 방바닥은 나 보다 더 진한 아쉬운 여운을 남기는 듯 했다.


어릴 적 이맘 때 큰 길 옆에 나 있는 농수로는 모내기가 끝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저수지에서 들어 온 물로 넘실댔다. 그 물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온갖 생물들로 가득했다.



찬 기운이 가득한 아침 공기를 호흡하며 졸린 눈을 비비 집 밖에 나가 보면 아버지는 다리 위에 사둘을 걸쳐두고 물고기를 잡고 계셨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 일은 비 오는 날의 습관처럼 이루어졌다.


10~15분 단위로 나가 사둘을 들어 올려 보면 사둘 그물 안에는 붕어, 피라미, 메기, 미꾸라지, 물방개, 장구아비, 버들치, 꽃붕어라고 불리는 흰줄납줄개, 꺽지 등 다양한 종의 물고기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사둘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쓰레받기를 좀 크게 확대시켜 놓은 것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그 쓰레받기 모양의 프레임에 그물을 고정시켜 물에 담가 놓고, 가끔은 된장 등 물고기 유혹하는 먹이를 모기장 천등으로 감싸 던져 놓기도 한다.


우리 시골에선 농수로를 “똘”이라고 불렀다. 똘도 논으로 직접 연결된 지류와 지류에 물을 공급하는 본류로 나누어진다. 집 앞에는 본류인 똘이 지나갔다.
백과사전을 보니 “똘”이라는 말이 “도랑”의 사투리라고 나오는데 도랑치고는 동네의 똘은 좀 큰 편이어서 넓이 2.5미터 깊이 1미터 정도의 농수로였다.

잡은 물고기는 매운탕으로 끓여져 어른들의 술안주와 밥반찬으로 사용됐다.
그중 모양이 이쁜 버들치와 흰줄납줄개 등을 링거 병에 담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멋진 수족관이 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기도 하고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그런 것들을 만들 생각을 했던 게 참 근사하기도 하고 마음도 넉넉해진다.

비 오는 날 아침에 비와 관련된 추억도 되살려 보고 “똘”,“사둘” 이런 단어가 낯설지 않도록 해 준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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