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상훈

“뭐 하냐?”

“아무 일 없으면 나와라 밥이나 먹게”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특정 연예인에게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특정 연예인이 친근함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위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와 같이 시기를 특정할 수도 없고 인사치레로 하는 "언제 한 번" 보다는 특정 연예인의 "밥 먹자"가 훨씬 유효하고 실현 가능한 확률이 99%이다.


“밥 한 번 먹자”와 비슷한 것으로 “언제 술 한 잔 합시다”도 용처가 비슷하다. 쓰임새는 아마도 술을 안 마시는 이들의 수가 많으니 “밥 한 번 먹자”가 더 많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지금껏 “언제 밥 한 번 먹자”가 유효한 행위로 이어지는 것을 거의 경험해 보지 못했다. 다른 인사말도 많을 텐데 피차 실현 가능성도 없는 약속을 하는 것에 대해 습관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문화라고 부르고 싶기도 하나 문화가 습관화된 것이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것을 뜻함으로 그냥 습관이라 하겠다.


배고픈 시절도 아닌데 공수표 날리 듯하는 인사 방식도 이젠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배고픈 취업준비생도 있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식사시간을 거르는 경우에는 더없이 소중한 약속이다.

어느 때인가는 그 말만을 크게 믿고 시간을 계속 비워 두고 있었는데 아무 연락이 없던 경우도 있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 경우도 있다. 언제라고 특정하고 나서도 연락이 없었다는 건 나의 잘못일까? 아마도 비슷한 인사말로 착각을 하고 잊기라도 했나 보다. 이처럼 적당히 아는 사이의 인사말로 하는 경우는 그렇다 하더라도 둘 사이가 돈독한 관계일 경우에도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면서 지나는 경우도 흔하다.


우리 사회에 ""과 관련한 인사는 왜 그리 많은가?

얼마 전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던 딸아이도 “할머니 식사하셨어요?”하고 여쭙는다. 아이 엄마도 “어머니 요즘은 무엇하고 식사를 하세요”, “식사 꼭꼭 챙겨 드세요”하며, 대화의 대부분이 “밥”이다.


“밥”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무엇이라고 “밥” 인사에 대하여 가타부타하는가 싶기도 한다. 물론 밥은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생명 연장의 가장 소중한 에너지원이다. 그중 쌀은 식량자원으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소중하다.


예전에 친구 집에 놀러라도 가면 의례히 저녁을 먹고 집에 오는 것으로 가족들은 알았다. 그렇게 힘든 시절인데도 놀러 온 아이를 박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숟가락 하나만 더 놓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았을 듯하다. 또 요즘 같이 밥을 쉽게 할 수 있는 조리기구나 조리시설이 다양하지 못했다. 밥을 알맞춤하게 하는 것이 어려워 잘못하면 어른 한 분이 찬 밥을 먹어야 할 상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사전에 충분히 먹을 것을 예상하고 준비해야지 그렇지 않다면, 너는 너의 집에 가서 먹어라 하며 야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때도 있었다. 먼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같이 등교라도 하려고 친구이름을 집밖에서 목청 껏 부르면 그 친구네 집은 식전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면 그 친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식사하는 친구 가족들 옆에서 앉아 있거나 서 있어야 했다.

좋아하는 반찬도 별로 없던 시절, 아침을 다 먹고 왔는데도 괜히 군침이 돈다. 얻어먹는 밥이 더 맛있다고 그들의 반찬에 군침이 넘어간다. 조미료를 넣고 쌀뜨물에 지진 동치미 정도의 식단인데 말이다. 밥을 물에 말아 익힌 신동치미 한 점을 그 아이 할머니가 그 친구 밥숟가락 위에 올려놓는다. 그 먹성이 왜 그리 먹음직스럽게 보였던지 지금도 그 장면은 맛 집의 음식을 연상하게 한다. 아마 시장이 반찬 아니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가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요즘 딸아이 친구들이 놀러 오면 피자나 치킨 아니면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켜준다. 아이들 식성이 까다롭기도 하고 갑자기 음식을 준비하는 것에 부담도 되기 때문이다.


친구 집을 나올 때면 벌써 해는 이미 지고 수확이 끝난 들판에선 하얀 눈가루가 날렸었다. 먼 곳에서 볏가리를 감쌌던 비닐이 하얀 옷자락 같이 펄럭이면 이웃집 할머니가 이야기 해준 귀신 이야기가 문득 떠올라 1천억 개 달하는 뉴런들이 급 반응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시간이면 따뜻하게 데워놨던 가마솥의 닦을 물도 차갑게 식어 있다. 하루 종일 밖으로 돌아다닌 양말은 흙냄새와 발 냄새를 뿜어냈다.

어쩔 수 없이 찬물로 세수를 하고 발을 닦는다. 간혹은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털실로 짜인 섬유 질속에 진흙덩이와 검불 등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정적이 흘렀던 안방의 따뜻한 아랫목 담요 밑엔 밥이 담긴 뚜껑 덮힌 스테인리스 밥그릇이 있다. 보온을 위하여 그리 한 것인데 대략 해시를 넘겼는데도 온기는 그대로다.

겨울철에 고구마나 콩엿, 과줄 등의 간식거리가 없으면 다시 한번 저녁을 먹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소화력도 뛰어났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