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떡국

by 이상훈

설하면 떠오르는 것이 떡국이다.

떡국을 만들기 위해 가래떡을 뽑아야 하는데 30-40센티미터로 찬물에 담겼다 올라온 가래떡은 아직도 식지 않은 김을 모락모락 뿜어내고 있다.


떡집이 아니라면 그 때나 지금이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가래떡을 떡 만드는 자리가 아니라면 맛 볼 기회도 흔하지 않다. 어머니와 함께 어느 해에는 동네 마당에서 떡을 뽑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쌀방앗간 옆에 마련된 떡 뽑는 기계에서 떡을 뽑기도 했다. 집과 가까운 곳에서 떡을 뽑을 때면 의례히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이고 자기네 떡을 뽑을 차례를 기다리다 가래떡이 뽑아져 나오면 가래떡 주인의 아이들은 긴 가래떡을 호호 불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것처럼 먹는 풍경도 귀여웠다. 어머니는 한순간 가래떡이 담긴 소쿠리를 부리나케 머리 위에 이고 식구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간다. 가래떡의 첫맛은 약간 짬쪼름하다. 그러다 계속 씹게 되면 탄수화물의 단물이 입안에 가득해진다. 가래떡은 처음 생겨날 때의 따뜻한 느낌도 좋지만 하루 정도 지나서 떡이 꾸들꾸들해진 것도 나름 맛이 좋다. 물론 이때 정도가 되어야 아궁이에 노릇하게 구워 먹는 재미가 생긴다. 떡이 노릇노릇 구워지면 떡의 표면과 속살이 분리되어 겉면이 구수하고 바삭한 과자 식감을 준다. 얇은 두께의 떡 표면을 얻기 위해 아궁이에 석쇠를 얹고 그 위에서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했던 기억이 있다. 짚을 때는 아궁이에 떡을 그냥 넣으면 표면이 새카맣게 타기도 해서 먹을 수 있는 부위가 적어진다. 간혹 덜 구워져 수분이 모두 빠져나가지 않으면 표면에 회색의 재가 떨어지지 않아 먹기가 곤혹스러웠다.

그때에는 “떡볶이 떡”을 따로 만드는 집이 없었다. 분명 기계는 있었는데 말이다. 할머니 댁에서 본 떡볶이 떡 뭉치를 생전 처음 본 기억이 있다. 처음엔 그것이 쌀로 만든 것이 줄 모르고 무슨 비누가 이렇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동네 쌀방앗간에는 엄청난 크기의 동력 발생기가 있었다. 보통 발동기라고 했는데 발동기만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발동기 주변엔 요즘과 같은 폐 엔진오일을 받아 내는 통이 있었고 엔진 오일을 넣고 빼는 과정에서 오일이 흘러나와 주변은 항상 검은색에 가까운 진청색의 오일이 범벅을 이루고 있었다. 그 커다란 발동기가 움직이면 그 소리는 온 마을을 깨워 놓았었다. 특히 추수철이나 햅쌀이 필요한 때이거나 아니면 방앗간 주인이 쌀을 외지로 방출할 때면 밤늦게 까지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쌀 방앗간에서 떡을 뽑을 때면 그 발동기가 움직였다는 기억이 몽글 떠오른다. (닭을 잡는데 소를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설마 아니겠지 아마 내 기억이 잘 못되었을 거야 음음)

그런데 동네 한 모퉁이나 어느 마당 넓은 집에 떡 뽑는 기계가 설치되면 그때는 보통 탈곡하는 발동기를 쓴다. 발동기를 보통 마력으로 힘을 크기를 나타냈는데 4마력은 되지 않을까 그런 기계에 피대라고 하는 벨트를 연결하고 상단의 사각 틀에 집에서부터 지어 온 고두밥을 부어 넣으면 작은 두 개의 구멍으로 떡이 나왔다. 요즘 떡집에서는 틀을 빠져나온 떡을 다시 모아 상단의 사각 틀 안에 부어 넣고 다시 한번 새롭게 떡을 뽑는데 그렇게 새롭게 뽑게 되면 떡 입자가 고와져 식감이 좋아진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고 밤늦게까지 떡을 뽑을 때는 한번 만에 가래떡을 뽑기 때문에 가래떡 안에 쌀 입자가 살아 나오기도 한다.

가래떡을 만들려면 고두밥을 지을 요즘 같으면 스팀기도 같이 있어야 하는데 동네에는 아마도 떡 뽑는 기계만 있었다는 생각이다. 마을을 벗어나 이웃 마을에 있는 떡집을 가면 거기엔 떡을 익히는 스팀찜기도 같이 있어서 쌀만 물에 불려 가면 되었다.

그렇게 집에 가래떡이 있으면 식사도 거르고 떡으로 배를 채웠다. 놀기를 좋아했던 나이에는 그렇게 떡 한 줄을 손에 들고 뛰어다니면서 먹는 것도 종종 있는 풍경이었다. 그러다 과식이나 갑작스러운 운동으로 토하기도 했다. 토사곽란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에 집 근처 논에는 마늘이 심어져 있었고 추위로부터 마늘을 보호하기 위해 볏단을 풀어 이불처럼 덮어 놓았었다. 어른들이 정말 싫어했던 짚이 깔린 마늘 밭 위에서 뛰어다니고 씨름을 하고 지금 우리 인근에서 많이 보아왔던 반려견들이 노는 것처럼 놀았다.

그러니 소화도 되기 전에 그렇게 뛰어다니니 토사곽란이 생기는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가래떡의 김이 사라지고 2~3일이 지나면 작두로 썰기 딱 알맞은 굳기가 형성된다. 작두는 보통 예전 한약방에서 약초를 썰던 크기였다. 그걸 새벽에 일어나신 아버지가 건넌방에서 담배를 태우시면 썰어 놓으면 떡국이 되어 닭국물이나 소고기 국물 아니면 싱싱한 굴이 있을 때는 굴 국물이 베이스가 되었다. 실고추와 김 그리고 계란 지단이 얹힌 떡국에 김장김치나 동치미 한 조각과 같이 먹는 맛은 우리 보통 “아는 맛”이라 더욱 침이 고이는 그 맛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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