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만 공허하고 오늘이 내일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지루한 날의 반복을 경험한 이들이 나를 포함해 적지 않을 것이다. 겉모습은 프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지만 공허하기 이를데 없는 날도 많다. 그렇기에 프리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사회관계가 촘촘히 구성되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이를테면 프리랜서를 선언한 사람이 정작 프리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단 일감을 물어 와야 하는 등 스스로 스케줄을 챙겨야 한다. 낫 프리 한 것이다.
자연에서 무위도식하는 사람도 그렇게 보일 뿐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는 못한다. 4계절을 미리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다음 계절을 맞기 힘들기에 말이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멋진 풍광의 자연 속에서도 수많은 경쟁상대가 있어 수확물을 놓고 경쟁을 하기도 한다. 다만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난 자연에 맡겨진 삶을 영위하는 것이지 실제는완벽하지도 않고 무위도식하지도 못한다.
실제로는 지원받을 손길과 잘 갖어진 금융재정을 통해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고 있을 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프리 하다는 것은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속박됨 없이 결정을 자유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 자유에 대한 환상이 밀물처럼 몰려올 때가 있다. 너무 일에 시달리기에 한적한 교외에서 자연 주는 신선함을 맛보고 늦잠을 자보고 하는 것들의 환상이다. 느지막이 일어나 남이 차려주는 브런치를 먹어 보는 것도 정말 괜찮은 일이다. 어쩌면 기회비용과도 관계가 있고 용기가 필요한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상위 포식자가 없는 어항 속에서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일정한 패턴으로 매일매일 살아가는 물고기들이 자연 속에 사는 물고기들 보다 라이프사이클은 짧다고 한다. 긴장감이 없는 무료한 삶이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뜻일게다.
단순한 것, 아무런 긴장감이 없는 것은 편안은 해 보여도 재미는 없다. 또한 단순한 것의 반복이기 때문에 무료하다. 결과물도 잘 생성되지 않는다.
어항 속에 같은 종류의 물고기들로만 넣어 놓는 것보다 상위 포식자 한 마리를 넣어 놓으면 같은 종끼리 보다 더 생기 있게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늑대가 사라지고 순록들로만 가득 찬 캐나다 숲이 황폐화되었다는 뉴스가 있다. 자연에서는 적당히 긴장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항 속 물고기나 늑대가 사라진 숲이나 긴장감이 사라지고 밸런스가 깨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험과 다른 더 큰 위험과 마주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프리 하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간단할 것은 같지만 실제는 그렇게 마음의 평안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바닷가나 깊은 숲을 찾는 것도 지친 몸을 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지만 장기간 머무르다 보면 그곳에 겪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익숙한 것이나 오랫동안 해왔던 것, 적성에 맞는 것 등을 바탕으로 자유로움을 찾아야 한다.
누구의 간섭이나 교류 없이 상당한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다 보면 우리의 대뇌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거추장스럽고 복잡한 문제가 들어오면 회피하기 급급하게 된다. 물론 청소년기냐 중년기냐 노년기냐에 따라 다르지만 밸런스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힘들게 된다. 목표를 세우고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물론 다른 차원으로 접근한다. 프리 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일에 몰두하거나 배우는 것에 열중하면 그런 집중을 통하여 무료함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자기 안의 것들이 달라지는 것이다. 물론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에는 자기의 자유 시간을 내어놓은 것이 필요하고 인생에 있어서 즐겼어야 할 부분들을 줄인 것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보상이라는 것이 채워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료함을 달래려고 단순히 배운다고 한다면 결과적으로 지속성을 상실하는 원인이 된다. 배움이 단순하게 되면 비용의 문제라던가 적성의 문제 등으로도 쉽게 배움을 포기하기도 한다.
종교인 등 인내심과 마음의 균형이 갖춰 있는 이들이거나 직업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하는 이들의 경우에는 아무리 바쁘다 하더라도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자기 시간을 할애해 목표를 성취하려고 한다. 프리 한 것이 좋은 것이냐 아니면 구속된 것이 좋은 것이냐 하는 것은 생각보다 결론을 쉽게 얻기 어렵다.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 않은 경우에는 말이다.
결혼한 이들은 무엇을 보상받고 무엇을 포기하는가?
배우자로 선택받은 이이든 배우자를 선택한 이이든 결혼하고 나서의 생활은 혼자일 때와 같이 자유롭지 않다. “나를 강력히 구속해 주세요”라고 원하는 이가 있을 경우라도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이를 테면 집에 있자니 무료하고 그래서 한 번 놀러 갔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재미있지도 않고 몸이 고단한 것과도 같다. 이럴 경우 집에 남기로 결정했거나 외출을 단행했을 경우 가지게 되는 것들이 결과적으로 다르지 않다.
결혼을 하게 되면 상대방과 가족 전체를 위하여 자기의 시간을 내놓아야 한다. 결혼 전에 했던 취미생활도 줄이고 개인적인 모임도 줄여나가야 한다. 설사 일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 전체의 일과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 돌아가야 잡음이 없다. 잡음이 전혀 없으려면 이 또한 기본적인 것들 이를테면 지원세력, 경제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밖에 결혼은 계획하지 않은 변수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 깊은 밤 갑자기 아이가 아프기도 하고, 산달이 아닌데도 산모의 산통이 생겨나기도 한다. 신혼부부의 양가 부모 중 적어도 한 분은 갑자기 암 등 질환이 발생해 상당한 시간의 치료를 받는 경우도 생겨나고 이 기간 중 많은 시간을 환자와 함께해 주어야 하기도 한다.
보통 이런 수고스러움은 상당한 신체적 정신적인 필요도를 동반하기 때문에 하고 싶을 때나 하곤 했던 결혼 전의 취미 생활과는 결이 다르다.
결혼으로 얻는 보상도 상당하다. 가족이란 따뜻한 품이 생겼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고 자녀가 생긴 기쁨을 또한 자녀를 키우면서 가지게 되는 뿌듯함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말들이 단순히 상식적이거나 너무 평이하여 쉽게 가슴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만든 가정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해지는 것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다. 이는 결혼하지 않은 이들이 게임 속에 즐겼던 것이나 동물을 키우면서 느끼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난 지독히 누구와 엮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 받고 싶지도 않아요.” 하는 분들도 있다. 또 아이를 방치하고 가정을 소홀히 하여 가끔 신문 사회면을 채우는 이들도 물론 있다. 그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었던 문제이고 사회 전체가 함께 구족적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들이다.
결혼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은 선택과 보상의 문제일 수 있다.
그렇기에 결과물도 공동체이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마무리된다. 가치를 어느 곳에 두느냐에 따라 이해를 달리할 수 있지만 어쩌면 피곤하더라도 결혼도 해보고 집에만 머물지 말고 외출하는 것이 같은 피곤함이라 하더라도 결과물을 달리 할 수 있으니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결혼이 인륜지대사라고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관계가 주는 안정과 종족의 번식이지 않을까 싶다.
또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야 하는 부담감만큼이나 자식을 성장시키는 성취감을 맛보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마 결혼은 인생의 최고의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성취감이 큰 만큼 부담감 또한 작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보다 과거의 조상들이 더 합리적이고 훌륭해서 자손들이 현재에 이르렀다고는 보지 않는다. 인륜지대사인 만큼 하늘의 도움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과거에도 함께 했던 하늘의 도움은 아마도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처지나 다른 목적에 때문에 공동체를 이어가는 일에 고민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말은 이런 취지에 나왔다고도 본다.
모든 자연의 원리는 인간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인류 역시 자신만의 노력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아니라고 보기에 말이다.
결국 인간이 수만 년 간 지탱해온 힘은 현재의 나와 지나온 조상들의 DNA들이 절묘하게 구성된 드라마 같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 각자는 쓰여진 자연이 만든 대본에 맞게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늙어가고 항상 젊은 시절과 같이 열정과 패기로 가득하지 않다. 사회 속에서도 항상 비슷한 사람과 경쟁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내려놓아야 하고 젊은이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등 나이가 듦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들도 달라져야 한다.
그런 삶이 아마도 시스템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어쩌면 조금이나마 프리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단순히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에 대한 나름의 소견을 쓴 것이니 생각이 다르다고 언짢아하실 일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