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에는 딸아이의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의견을 나누던 중 견해가 다름으로 인해 특히 아빠인 내가 딸아이의 입장이나 최신의 입학전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서 적당히 인근의 통학할 만한 학교를 선정해 놓고 언짢은 표정으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딸아이의 입장에서는 요즘 입시제도가 바뀌었고, 영어과를 전공하면 원어민 수준의 아이들과 경쟁해야 하기에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좋은 등급을 얻으려면 중국어과를 선택하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나의 주장은 네가 다른 것보다 우선해서 해온 것이 영어이고 오래도록 배워왔던 영어 하나만이라도 마무리해야지 중국어를 하게 되면 결국은 두 마리의 새를 쫓는 격임으로 하나를 할 때 보다 집중하기 힘들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다. 그렇게 언짢은 표정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오늘 아침 일찍이다. 카톡이 하나 들어와 있다.
며칠 전 임원 선임을 새로이 하면서 신규 임원 구성에 어려움이 있었던 단체의 신임 단장으로부터였다. 며칠 전 우연히 모임 소속의 그분을 만나게 돼 파트 장 선임을 부탁드렸는데 그 일로 인해 해당 단장으로부터 총무가 파트장을 겸직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 하며 선임을 취소하도록 해달라 하는 톡을 받은 것이다. 한편으론 특정 파트에 임원이 편중되어 그럴 수 있다는 생각과 한편으론 뭔가 막무가내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특히 이렇게 이른 아침이면 아마 이 분은 밤새 이 문제로 고민을 했겠구나 싶은 생각도 같이 했다.
편중이라는 게 파트를 나누어 파트별 임원 비중을 살펴보면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일 할 수 있는 연령대별로 구분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편중을 다양한 시선에서 접근해 불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접근법일 수 있다. 우선은 전체를 위해 일할 사람을 찾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것이 틀린 일은 아니다.
임원 선임 당시 모든 소속 단체원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나는 나이가 있었어서 직책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였다. 그래서 절대다수에게서 젊은 사람들이 좀 맡아서 했으면 한다. 이런 기조가 널리 암묵적으로 깔려 있었다. 그랬기에 우선은 일할 수 있는 나이대를 중심으로 임원진을 구성하는 것에 많은 관심들이 있고 내심 그렇게 되길 간절히 원하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어느 순간 특정 파트에 임원이 몰려있다고 지적한다. 이 부분이 내 시선에서는 적합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조직의 운영에 있어서 업무 분담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특정 층의 쏠림 현상을 해소하는 데 있었다면 연령대의 구분을 넘어 다양한 참여로 가져가야 한다. 그런데 다양성을 추구하기에는 많은 부분이 정체되어 있고 또 모든 이가 임원의 일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들을 했다.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너른 인재 활용을 고민해 조직을 꾸리는 것은 처음부터 언감생심이었다. 그렇다고 몇 사람 되지 않는 젊은 이 만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도 담당 임원의 피로도를 높이 결과로 이어진다. 나로서는 이런저런 고민 끝에 우연히 길에서 만난 그분께 파트의 임원이 되도록 간청을 드려 답을 얻었다. 그런데 특정 파트에 임원이 편중되어 있다는 이야기로 그분의 임원 선임을 거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심 답답함이 밀려왔다. 어쩌면 의도하지 않은 독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분은 업무의 효율보다 보고체계의 문제나 원칙의 문제가 중요하다 말한다. 물론 좋은 지적이다. 원칙은 어떤 일의 근본이다. 그렇게 가야 함이 마땅하고 그렇게 되도록 시스템이 움직여야 한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렇게 까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원칙과 보고 및 협의가 단순히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들러리 여서도 아니 된다. 그분은 앞으로 단 한 발도 원칙에서 벗어난 발언과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위해서 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기준이 깨어져 있는데 자기 나름의 기준에 부합하는 부분만을 원칙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욕심이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마무리해야 할 것들이 줄을 선다. 대부분 일정을 앞당겨 달라는 것들이다. 양질의 조사량은 유지해야 하고 일정은 앞당겨라. 그런데 모든 일이 시간과의 싸움이다. 시간이 줄면 조사량을 담보할 수 없다. 이율배반적인 것을 동시에 요구하는 요즘이다. 일하는 직원들의 노고도 재촉하는 발주기관의 다급함도 일단 어느 선에선 합의가 필요하다. 강하게 요청한다고 안될이 되는 것으로 바뀌지 않는다. 순리에 입각한 조용한 접근과 기다림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