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에서 보이는 것들

by 이상훈

가을에 떠오르는 감성은 낭만이고 추억이고 겨울 앞에서 사라질 것 같은 그래서 아픔을 간직한 애틋함이다.

그런 감성을 갖게 하는 것은 아마도 가을꽃 때문인 것 같다. 가을꽃은 겨울바람보다 더 차가운 냉기를 담은 늦가을 바람으로 따뜻함과 차가움의 색을 번갈아 가며 더하고 더해 깊고 짙은 색감과 거기에 음영까지 담아낸 듯 가볍지 않은 도도함이 가득하다. 도저히 물감으로는다 표현해 낼 수 없는 색감이다.

산책하기 좋은 가을에 안양천을 걷다 보면 길옆으로 한 무더기로 피어난 야생화들과 자주 조우한다. 무심한 척 지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어쩌다가는 이들 한 무더기의 꽃단지에서 아름다움을 넘어 처절함을 감춘 슬픔과도 같은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한다.

가을꽃에서는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염두에 두고 만나는 연인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어쩌면 헤어짐을 앞에 두고 서로에게 더 좋은 기억으로 남겨지려고 애쓰는 것 같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달에게 자기를 각인시켜 보려는 처절한 몸부림 같은 감정이다.

왜 몸부림처럼 보였을까?

잊혀지기 싫다는 존재의 의미를 남기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길옆 들국화

그모습은 나에게 있어서는 짝사랑했던 초등학교 여자 친구 같은 친숙하고 편안한 그리고 꾸밈이 없으면서도 기품이 있는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구절초는 그런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하다면 평범한 들국화인데 의미를 부여해 자세히 견주면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아도 정갈하고 품격이 있는 듯 보인다.

안양천 변의 들국화 그중 흰색과 보라색이 그러데이션 된 구절초의 꽃잎을 보면 참 아름다운 색감과 모양이다라는 감탄이 절로 생겨난다. 이 꽃은 각자 각자의 개별적인 꽃송이도 아름답지만 보통의 국화꽃처럼 한 무더기로 피어 있는 아름다움도 상업적으로 생산된 꽃들보다 더 멋이 있다. 길 가에는 같은 시기에 피어나고 있는 핑크 뮬리도 있다. 핑크 뮬리도 색감이 참 아름답다. 그런데 멀리서 한 무리로 피어나야 아름답다. 지금은 핑크 뮬리가 그렇게 사랑받는 식물은 아니지만 정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 핑크 뮬리 단지가 있을 정도였다. 멀리서 보면 붉은보라 색상과 섬세한 가지로 바닷속 산호초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가까이 보면 썩 이쁘다는 느낌은 없다.

그런데 들국화는 어떤가.

말이 들판에서 자기 마음대로 피어나는 들꽃이라고 하지만 민가에서 열심히 가꾸어 자라난 꽃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는데 안양천변의 들국화는 어찌 된 일인지 꽃을 피우는 기간도 여타의 꽃보다 길다. 아마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도 꽃봉오리가 올라올 듯 싶다. 지금까지 지나다 보면 개화를 하고 나서도 몇 주째 여전히 고고한 자태의 꽃잎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꽃을 검색해 보니 구절초라는 들국화의 일종인 듯싶다. 꽃잎 하나하나가 겹치지 않고 길쭉길쭉하게 뻗어 있는 것이 일반 국화보다 멋지고 아름답다. 가꾸지 않아도 그냥 그 자체로 품격이 느껴진다. 최근 2주간 사이에 몇 차례 내린 늦가을 비에도 많은 수의 꽃잎들이 지지 않고 굳건한 모습이다.

"웬일이야! 이 꽃" 하고 감탄하며 꽃잎이 말라 버린 몇 개의 꽃봉오리를 채취했다.

꽃잎의 색상도 흰색 노란색 보라색은 물론 옅은 보라색으로 그러데이션 꽃잎까지 풍성하다. 꽃의 향기야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짙은 국화향에서 몸에 좋은 한약 성분을 느낀다.

들국화 씨를 얻기 위해 꽃잎이 말라버린 꽃봉오리 몇 개를 채취해 와 빈 알루미늄 통에 담아 놓았다.


한밤의 갈대 2022.11.22

안양천변에는 정말 구절초 말고도 갈대와 억새 그리고 쑥부쟁이도 자란다. 그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가을의 전령사나 된 듯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만 너나없이 늦가을이 만든 대표 작품이나 된 듯 스스로 품위를 매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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