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

by 이상훈

즐거움을 주는 것들에 대해 상상이나 해봤나. 그런 게 있을까 하고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조금이라도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생각해 보고 아껴주련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밖으로 불러 내 보련다.

오늘 바로 전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 너무 삶에 찌들어 내가 꾸는 꿈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하면서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돌아보고 기쁨을 함께 나눠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어쩌다 보면 내가 가장 많이 기분 좋게 보내는 시간들이 있었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들은 뭘까 이런 고민도 잠시 해 보았는데 남을 관찰해 보는 것도 괜찮다 싶다. 나에게 있어서 예전엔 좀 운동이나 등산도 좋아했는데 어느 사이 무릎 상태도 안 좋고 해서 지금은 거리를 두고 지내는 편이다.

생각해 보면

잘 설계된 집 도면과 완성된 집의 사진들을 보는 것도 소소한 기쁨을 주는 것중 하나였다. 그리고 많은 남성들이 좋아한다는 “자연인” 같은 다큐물도 흥미 있게 본다.

실제로 현실에서는 옮기기가 부담스러운데 남들이 하고 있는 것들을 혹은 남들이 지어 놓은 집을 구경하는 것은 쉬운 일이기도 하고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기쁨을 주기에 말이다.




지붕을 천장을 벽을 창문을 무슨 소재로 하고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하고 벽은 얼마나 두껍게 할까 방음이나 단열 소재는 무엇이 좋을까, 지붕 소재나 벽 마감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부터해서 중정을 만들까 중정을 만들면 외부로부터의 시선은 차단하고 자연을 집안에 들여놓은 느낌이어서 관심이 많았다. 어릴 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대청에 누워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던 그런 감성을 지금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창문은 통 창으로 크게 설치해서 외부 전망을 시원하게 보도록 하는데 관심이 높다. 현실에서는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밤마다 벌레들 차지가 되고 새벽이면 벌레 사체와 벌레의 분비물로 지저분해져 깨끗함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리고 어린 시절엔 왠지 2층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내가 살 던 시골에는 붉은 벽돌로 만든 이층 집이 딱 두 집 있었다. 늦여름이었나 아님 가을이었나 모르지만 학교 선생님들의 가가호호 가정방문을 하는 날이었다. 길 옆 2층 창문에서 선생님을 부르던 2층 집 아이가 엄청 부러웠었다. 꽤나 여유롭고 멋이 있어 보였다. 사랑은 어쩌면 저런 여유에서 나오는 가 보다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아이의 얼굴 표정도 밝고 구김이 없었다는 생각이다. 없는 집 아이들은 대부분 옷차림도 추레하고 얼굴 표정도 넋이 나간 듯하고 그늘이 져 있었다. 물론 있는 집 아이가 배려심이 많고 그런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붉은 벽돌과 푸른색 계열의 페인트로 칠해진 집 창문은 나무 프레임과 유리로 널찍널찍하게 짜여있었고, 대청마루 가장자리에도 빈틈없이 불투명 유리문을 달아 단열효과를 높였다.

그런 이웃집을 겨울철 저녁에 방문하면 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시골집이라는 게 대문만 들어서면 곧바로 내부 사정을 알 수 있었고 부르기만 하면 곧바로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는데 개보수한 집들은 중문을 하나 더 덧대면서 집안 사정을 곧바로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잘 사는 집이던 못 사는 집이던 부엌은 대부분 비슷했다. 부엌을 정지라고도 했는데 부엌에는 설강을 두기도 했다.

부엌을 나서면 장류를 보관하던 장광이 있었다. 부엌과 연달아주방기구나 음식재료를 보관 하는 팬트리 역할을. 하는 식재료 창고를 두기도 했다. 설강은 미리 한번 삶아 놓은 보리밥을 채반에 담아 삼베 보자기로 덮어 올려놓을 때가 많았고 그 외에 그릇이나 바가지 등 부엌 도구를 올려놓기도 했다. 이외에도 부엌에는 불을 땔 때 사용하는 풍구와 부지깽이라고 해서 가느다란 철이나 나무로 만들어 불을 땔 때 아궁이 안의 땔감이나 타고 난 재를 정리하도록 해주는 장비였다. 그리고 삼태기와 땔감 재료를 쌓아두는 곳이 있었고 찬장과 송판으로 대충 만들어진 요리 대가 있었다. 요리 대가 없는 집들은 낮은 부뚜막에서 허리를 굽혀 요리를 했다. 전등이 들어오기 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 어두컴컴한 호롱불을 켠 부엌에서 호텔 셰프보다 더 전능한 모습으로 요리를 했다. 전기가 들어온 다음에는 그나마 30촉짜리 전구가 밝음을 더해줬다.

그 새벽에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엄마는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새벽녘부터 부지런히 움직이셔야 했다. 지금은 아일랜드식 주방 테이블과 현란한 인테리어의 조명 오븐, 인덕션, 식기세척기 각종 냉장 고류 등으로 간편하게 다양한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50년의 간극은 정말 엄청나다. 지금이라고 해서 모든 가정이 현대화된 조리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균적인 조리환경은 엄청나게 달라져 있다. 벽타일과 개수대 그리고 환풍구 등 기본 시설물에 위생적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다. 또한 주방기구들도 디자인과 소재에서 별천지라고 해도 무방하다. 확 트인 창문과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항상 일정한 온도의 실내에서 준비된 식재료와 그에 걸맞은 식기류를 사용하여 멋진 식사를 준비하는 것을 50년 전에는 아마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밖에도 예전에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한 다음 음식과 밥을 여러 개의 상에 나누어 대청이나 방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것도 여성들의 힘만으로 말이다. 대단한 근력과 집중도가 필요한 상 나름이었다. 상이 조금이라도 기울면 준비된 음식은 순식간에 흙 마당에 뒹구는 구조였다.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까다로운 어른이 계신 집은 찬이 입맛에 맞지 않다면서 상을 뒤집어 버리는 일도 간간히 보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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