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

by 이상훈

st. stephen


동네 형님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매주 첫째 금요일이 모임 날짜인데 그간 회사일로 참석을 많이 못한 가운데 이번에는 모임 멤버 중 한 분이 시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여 만사 제쳐두고 참석을 결심하였다.

요즘 같이 매일매일이 살얼음판 같은 때도 없다. 회사 일이나 동네 일이나 개인들의 욕심 혹은 소통부족으로 삐거덕 거리는 상황이어서 마음도 많이 상했고, 몸은 몸대로 많이 지쳐 그동안 집안일을 돌보는데 적잖게 소홀했던 점도 많았다. 이 때문에 아이 엄마로부터 위로보다는 핀잔을 더 들었지만, “그래도 오늘 모임만은 가보자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하는 심정으로 참석을 했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형님 누님들, ‘하하’ 말이 형님 누님이지 다 10살 이상 윗분들이시다. 누님과 형님들은 동네일로 처음 만났는데 소일거리로 트럼펫을 배우러 다니시기도 하고 16주 과정의 사진 찍기 강좌도 수강하고, 한 분은 부천문화원에서 향토연구위원으로 참여하시는 등 참 활발한 노년시기를 보내고 있다.


나이 든다는 것이 고집을 피운다는 것과 어떤 면에서는 맥을 같이 하기도 하는데 이분들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맞춤하게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약속된 여섯 분 중 두 분은 오시는 중이라며 자리가 비워져 있다. 막내 체면에 꼴찌를 면했으니 ‘다행이다’하면서 테이블을 6인용으로 정리하고 수육정식을 주문했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어느 쪽으로 가면 빠를까? 1단지를 관통해서 나아갈까! 아니면 1-3단지 사이를 지나가는 게 나을까! 고민하다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딸아이 마중도 나갈 겸 1-3단지 사잇길을 마주하고 있는 범박교차로로 향했다. 마침 녹색 신호등이 들어왔고 땅을 보고 길을 걷는 흰색 롱패딩점퍼를 입은 아이를 발견했다. 우리 딸이다. “ooo아!” 부르니 깜짝 놀라며,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아빠! 모임가요.” “엄마랑 저녁 맛있게 드세요”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프라임마트 쪽으로 내려가는데 빵집과 정원치킨사이에 적색신호등이 오래 걸려 있다. 급할 건 없지만 그래도 몇 달 만에 가는 모임인데 너무 늦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솟아나는데 몇 사람은 이미 신호와 관계없이 차량 흐름이 없는 틈을 타 건너기도 한다. 정원치킨 방향으로 건널까! 하다가 어차피 교각 밑에서 다시 신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 녹색신호가 바뀐 순간 대각선 방향인 ‘칼국수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교각 밑을 지나니 연달아 늘어선 두 개의 초대형 교회 건물이 위용을 자랑한다. 교회 수만큼만이라도 우리에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올랐다. 룸으로 예약을 해놨다고 했는데 룸은 불이 꺼져 있다. "여기야, 여기” 형님들이 부르는 곳으로 갔다.

안자마자 동석하고 있는 누님께서 책을 한 권씩 주신다. 사위 분이 책을 쓰셨단다. 요즘 일반인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긴 한데 젊으신 분이 책을 내다니 "대단하다"하면서 책을 낸 이의 일상 속의 기록들을 들춰본다.


약속된 분들이 오시고 식사를 시작하면서 지나간 이야기와 술이야기, 새로 옮긴 부서 이야기 등으로 이야기가 제법 길어질 무렵이다. 노인복지와 관련하여 노인들이 일자리 문제가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발언이 불쑥 튀어나온다.


공공기관에 취업한 노인들과 새롭게 일자리를 가지려는 노인들 간의 일자리 배분에 대한 형평성 문제이다. 모든 노인들이 제한된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기존 일자리에 취업하기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불만들이 많단다.

말씀을 하신 분은 은행 지점장으로 정년퇴임하시고 신학대학원에 다니는 것은 물론 조경 관련 자격증 등도 따고 남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계시는 분이다.


노년인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요즘 출산율 감소로 어느 시점부터는 노동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단계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젊은이들의 취업도 어렵고 반듯한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운 상황이지만 현재 일본이 겪는 일손부족 현상을 우리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노인들을 위한 사회적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복지예산이 모두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정치인들이라면 너도 나도 군침을 흘리는 분야이기도 하고 한 표라도 얻기 위해 생색내기용 정책을 입안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장 끼니 걱정과 난방비 걱정을 하는 이들을 위해 복지정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고, 턱 없이 부족한 연금액수와 정년과 멀어지는 수혜시점 그리고 늘어나고 있는 명예퇴직도 불안정한 노후의 전주곡이다.

우리 집 아이도 이제 초등생인데 내가 정년 무렵이나 돼야 대학에 가게 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시대인데 피부로 와닿는 느낌은 2천 년대 초반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세금 등 지출 관련항목들만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래가 암울하다는 것이 그냥 남들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 드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소득활동을 덜해서 그럴 것이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과거에 비해 현재 내가 내 업무에 투입하는 열정과 업무량, 시간 등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내 나이 정도가 되면 우리 직장의 경우 2000년대 초에 근무하신 분들은 거의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세대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술자리에서 종종 푸념 섞인 말로 “선배들 똥만 치워주다가 인생 끝나는 것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시쳇말로 도로 위엔 비싼 외산 승용차가 넘치고 유명 리조트장이 있는 곳에 가면 비싼 요트들이 가득하다. 우리나라 인구에 비하면 참으로 많은 숫자 같기도 하다. 사회적 평균이 얼마 얼마라고 자주 등장하는데 고 놈의 평균이 나 하곤 도대체 키를 맞추지 못한다는 느낌이. 괜히 등장하는 게 아니다 싶다. 소득 분배의 불평등인가! 그런 생각도 드는 것도 비정상은 아니다.


정부 정책이 입김에 센 이익단체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정치인들도 돈줄이 되는 곳을 굳이 탄압하지 않는다. 적당히 압박을 해도 표가 잘 나지 않는 속칭 ‘유리지갑’이라고 부르는 직장인 월급에만 눈독을 들인다. 그것도 해마다 과세기준을 바꾸어 가면서 말이다. 어쨌든 정부가 원하는 세수 수준을 맞춰간다. 세금도 주세나 담뱃세 등 간접세 비중이 너무 높다. 애먼 국민들만 속상하다. 돈을 많이 번 사람이 많이 내는 그러한 사회가 아쉽다.


교육은 교육대로 답답한 형국이다. 이른바 금수저 아이들만이 그나마 외풍을 덜 받고 살아간다. 모처럼의 천재아이가 태어나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려 해도 우리 사회는 그 아이가 성장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교육의 평등이 구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력을 기반으로 죽은 지식을 얻어오고 그 점수를 바탕으로 특권층이 되어 간다. 사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이 국가의 도움으로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다음세대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컴퓨터를 열면 알 수 있는 지식으로 취직을 하고 로스쿨이라는 현대판 음서제도로 영달을 세세대대로 이어간다면 개인적인 불행도 불행지만 열강에 둘러싸인 이 민족의 앞날이 어두워질 뿐이다. 미래의 주역이 될 아이들이 꿈을 키워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것도 모두가 합리적이고 평등한 룰을 통해서 말이다.


개인의 영달에 몰입하는 사교육 시스템은 국내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국가를 발전시켜 경쟁력을 갖춰나가고자 하거나 보편적인 인류애를 실현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서비스시스템 등을 보아라 아무리 선진문물을 배우고 돌아온 영재들을 채용하더라도 선진국의 벽을 넘지 못한다. 하는 짓이란 게 국민들을 상대로 사기성에 가까운 일들이나 벌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웃과 사회를 위해 어쩌면 본인 자신을 위해 좀 더 개방적이고도 희생적인 일들을 해 나가야 할 책무가 하나씩 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개인이나 가족 구성원만의 성공도 일정한 정도에서는 필요하겠지만 이 사회와 국가를 발전시키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그동안 너무 가난하게 살아왔기에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되었다는 것이 성공했다는 의미로 많이 인식되고 있으나 이제는 적어도 사회를 위해 시스템을 바꾸는 노력을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이 이 사회의 진정한 어른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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