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들의 수다
해가 중천을 지나 오후 2시 정도가 되면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달린 고드름에서 뚝뚝 낙수가 생긴다. 낙수가 떨어진 자리에도 얼음이 녹아 겨울 땅은 비가 온 듯 부분 부분 검은 빛깔의 젖은 땅이 되어서 사람의 신발을 꺼린다.
대문 앞 있는 가마니 창고에도 온기가 스며들어 사람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빈 새끼틀 소리가 아닌 어느덧 대롱대롱 윙윙하며 새끼를 물레에 감아내는 소리로 바뀐다. 어느새 규칙적인 자장가라도 되는 냥 일정한 선율로 안정감을 뽐내는 듯 들린다. 대부분의 집에서 가지고 있는 새끼틀은 두 개의 나무 발판으로 구성된 족 답(足踏) 장치와 연결 기어 그리고 물레로 이루어져 있어 사람이 일일 발을 사용해 직선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고 새끼를 꼬도록 했다. 모터로 돌리는 전동식은 족 답장 치를 없애고 주축에 벨트 풀 리를 붙여 속도를 높였는데 이 집이 바로 전문 농군을 고용해 전동식 새끼틀로 새끼를 꼬고 있는 것이다. 아마 전동식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점이 많았지만 내가 자랄 때만 해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내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그 시골에 이처럼 농사일을 위해 셋방을 사는 부부나 남자들이 꽤 있었다는 사실이다.
창고 안의 사내는 구레나룻에 뿌연 탑 새기가 가득 올라앉은 것도 잊고 털 고무신을 신은 발로 바닥에 떨어진 지푸라기를 밀어내기도 하며 새끼틀에 팔 토시를 찬 양손으로 짚 가닥을 연신 밀어 넣으며 문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남자는 햇볕에 그을렸는지 아니면 전날의 과음 탓인지 깊게 주름진 얼굴이 적갈색이다. 적갈색의 두터운 피부는 아마도 자연에서 일부를 취하고 술에서 일부를 취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 슬쩍 본 것이기는 하지만 얼굴 전체가 뽀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눈썹까지 뽀얀 먼지가 쌓인 듯하다. 그 남자의 손에 끼고 있는 목장갑의 손가락 끝 부분이 해져 구멍이 나있다.
마당은 바닥이 고르지 않다. 처마 밑 짚 가닥에 대롱대롱 매달린 고드름에서 떨어진 물은 마당의 가장자리 낮은 것으로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낙수가 비켜간 자리는 젖지 않은 마른땅이다. 이곳으로부터 구레나룻 남자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창고 안까지 굵기가 다른 새끼가 길게 늘어뜨려져 있다.
소리의 울림 이외에 다른 공기는 조용했다. 다만 참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거기에 더해 새끼틀 돌아가는 소리도 아주 조용히 평범한 생활 소음인 것처럼 참새들의 일상인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인지 참새들도 그 소리에 둔감한 듯 창고 지붕과 마당을 번갈아 날아올랐다. 내려앉았다. 반복하면서 멀리 떠날 생각을 안고 있다.
왜일까?
마당의 마른자리에 뿌려진 쌀겨 때문인가 싶기도 한데 쌀겨는 삼태기 밑에 집중적으로 뿌려져 있다. 다만 삼태기가 가느다란 나무기둥으로 세워져 있어 위태위태한 형국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새들은 묘하게 삼태기 안으로 진입하지 않고 주변에서 연신 쌀겨를 부리로 쪼아댄다.
남자는 그것을 보는 것 같다.
어느 순간 두려움을 잊은 참새가 삼태기 속으로 들어가 주기를 말이다.
겨울 참새 둥지
아버지가 참새 한 마리를 잡아 오셨다. 모두가 잠든 그 밤에 아버지는 그 냥 들어오기 미안했는지 어디서 참새 한 마리를 손에 꼭 안고 오셨다. 그 참새의 발에 실을 묶어 내게 건넨다. 참새는 거의 미친 듯 퍼덕이며 결국 장롱 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최초로 시각에 머물렀던 생명체가 촉각으로 느꼈던 사건이다. 장롱 틈에 들어간 참새는 아마 똥을 쌌지 싶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 뒤고 난 후 고학년 언니들과 밤늦도록 뛰어다니다가 어느 날 초가지붕 추녀 끝자락에 난 구멍에서 참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고학년 언니들은 안다. 그 구멍이 참새의 집인 걸 간혹은 집쥐가 들락거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하루 종일 먹이 사냥으로 지친 참새들이 쉬고 있는 집이고 간혹은 새끼를 품고 있는 집이라는 걸 말이다.
아이들이 참새를 잡는 방법은 이렇다. 추녀의 높이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어른 키를 넘어서는 추녀에 손을 대려면 긴 사다리가 필요하다. 사다리는 대부분 창고에 있거나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간혹 가볍게 만들어진 사다리가 있기도 해 아이들이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도 이동시켜, 지붕에 걸쳐 놓을 수가 있었다. 그런 다음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추녀 밑에 뚫어 놓은 새 집에 손을 깊숙이 뻗어 넣어 잠자고 있는 참새를 끄집어낸다. 대게 참새는 자기 집 주변에서 움직이는 소리와 진동으로 한 밤중이 아니라면 대부분 집을 벗어나 도망을 간다. 그래서 도망가는 것을 미리 방지하려면 플래시를 켜 참새 구멍을 비춰주어야 한다. 그러면 참새는 플래시 빛에 눈이 잠시 멀어 움직임을 포기하고 이틈에 키가 큰 고학년 언니들이 참새를 움켜쥐게 된다. 참새는 성격이 급해 가둬 놓으면 얼마 못가 생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