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얼마 남지 않다.
어린 시절 설 이후 보름 주변 밤하늘은 참 맑았다.
낮과 같이 환하게 떠 있는 달로 밤하늘은 구름조차 구별할 정도였고 상쾌했던 밤공기는 지금도 코끝에서 느껴질 정도로 정겹다. 온통 평지였던 동네는 마을 주변의 대부분의 논과 밭에 마늘을 많이 심어 놓았고 동해를 방지하기 위해 볏짚을 두껍게 덮어 놓았다. 폭신한 볏짚이 펼쳐진 마늘 밭은 아이들이 놀기에 그만이었다. 낮이라면 어른들의 꾸중으로 마늘밭에 들어갈 엄두도 못 낼 터였지만 밤은 달랐다. 어른들은 사랑방에 모여 술 한 잔 기울이기에 바빴고 초저녁 잠이 많으신 노인 분들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기침을 하고 아침 담배를 태웠으니 말이다.
특히 달이 휘영청 밝게 떠오른 설 주변 날의 밤은 낮과 다름이 없었다. 더구나 밤 시간은 아이들의 노동력도 덜 필요로 했고 어른들의 심부름도 없는 천국 같은 자유시간이었다.
동네 아이들의 숫자는 10여 명이 넘어서 무슨 놀이를 해도 충분히 넘치는 인원이었다. 아이들은 형님, 누나를 중심으로 두 패로 나뉘어 한 패는 볏짚단속에 숨었고 한 패는 숨어 있는 아이들을 찾으러 다녔다. 참 단순한 놀이였어도 언니 형들의 손을 잡고 한 팀이 되어 밤새 논다는 것은 큰 재미를 주었다. 찾는 것보다 숨어 있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어느 시간까지 찾지 못하면 포기를 선언하고 패했음을 인정한 듯하다. 승리를 하기 위해 참 많은 것들이 시도되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마늘 밭에 납작 엎드리기도 하고 굴뚝 뒤에 혹은 멍석이 가득한 창고에 혹은 무시무시한 화장실 안을 마다하지 않고 숨어들었다. 당시에 재래식 화장실과 관련해 전해지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 으슥한 곳을 혼자 혹은 둘이 숨었었다는 것은 게임에서 이기고자 하는 절실함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보면 그게 무엇이라고 그렇게 까지 했을까 싶은데 말이다. 더구나 그 놀이를 하고 나면 양말과 겉옷은 물론이고 머리와 온갖 곳에 먼지와 탑새기 그리고 지푸라기가 가득했다.
그 당시 화장실과 관련해 어른들은 화장실에 갔다가 넘어져서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전해주었었다. 일단 화장실 귀신으로 인해 그곳에서 넘어지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화장실 천장에서 귀신이 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가 일 보던 사람이 일을 마무리하고 일어나 귀신 머리카락을 밟고 나가려 할 때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넘어뜨린다는 것부터 해서 다양한 귀신레퍼토리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이렇게 저학년부터 고학년 언니 형들과 손을 잡고 밤새 뛰어다녔다. 물론 다치는 사건 사고도 적지 않다. 마늘 밭이 평평하지 않아 발목을 접질리는 사고가 으뜸으로 많았고, 논밭 가장자리의 일부 녹지 않은 눈이 얼음이 되어 얼굴 등에 상처를 입는 사고도 많았다. 그러나 다쳤다고 공식적으로 들은 것은 별로 없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친 것을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바람 한 점 없이 냉한 기운만 가득했던 겨울밤 마을 한가운데의 마늘 밭은 어느 사이 아이들이 뿜어낸 입김이 뜨거운 공기층을 만들어 추위를 느끼지 못하게 했다. 거기에 수완이 형, 복실이 누나는 등 마음씨 곱고 동생들을 알뜰히 챙기는 형님과 누님들의 따뜻한 손길도 있었다. 그 누님과 형님들은 이제 세상에 몇 분 안 계신다.
늦은 밤 귀가한 아이들 중 몇 명의 아이가 손과 발을 닦고 잤을까? 그래도 고뿔 하나 안 걸리고 다음 날 또 열심히 뛰어다녔던 걸 보면 참 세상을 보는 관점이라는 것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 싶다. 요즘의 출산율과 육아방식을 보면 말이다.
어느 날인가 옆집 사는 종근이라는 아이는 아버지에게 내쫓겨 볏짚단 속에서 의탁해 추위를 피하다 잠이 들었다가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힌 사건도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 늦은 밤까지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아이의 부모님이 이 집 저 집을 찾아다녀도 찾지 못했다. 나중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아이 이름을 부르며 찾아 나섰다가 결국 아이의 집 인근의 볏짚단 속에서 잠든 아이를 찾아냈다. 잘못하면 동사할 수 있는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예전 어른들은 아이들을 속옷 차림으로 내쫓는 일이 참 많았다. 형제들이 많은 시골에서 활동력이 넘치는 아이들끼리 밤늦게까지 다투는 일은 흔했고 어른들은 속옷 차림으로 겨울밤 집 밖 추녀 밑에 서 있도록 하는 체벌을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