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 높은 종탑을 가진 교회가 있었다.
그날 약간의 한기를 지니고 있던 어둠을 헤치고 새벽의 신작로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의 말소리엔 따스함이 있고 위로와 격려가 가득했다. 신 새벽녘 들판 위에 우뚝 서 있는 교회 종탑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파장이 길다. 어느 때부터인가는 전자 음향으로 바뀌었지만 내가 그 길을 걸었을 때는 묵직한 타종 소리를 내었었다. 그 긴 파장은 창호지를 바른 문에 두드리면서 누이를 깨웠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고 정말 따스함이 간절히 요구되는 그 시간에 누이는 옷을 수습하고 잠이 덜 깬 나와 함께 집을 나섰다.
새벽녘의 서늘한 문고리를 열고 집을 나서는 부산한 소리에도 짐짓 안방에 계신 아버지는 모르 척하시는 것도 같다.
농번기가 아닌 겨울철에 새벽예배를 보려면 많은 용기도 필요하다. 따뜻한 이불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은 물론 어두컴컴한 신작로를 대략 3킬로미터 정도 걸어야 가야 교회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더구나 교회로 가는 길옆에는 큰 수로가 있었고 겨울철이 아닐 때에는 수로관에서 울려 나오는 물소리가 귀신 울음처럼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어쩌다 교회 부흥회라도 하는 날이면 권사나 집사 신분의 신자들이 길을 함께 했는데 하느님의 기적이나 은총 혹은 역사하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번 부흥회에서 반드시 치유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신의 재림과 같은 특별한 은총을 원했던 아니면 물질적인 풍성함을 원했던 교회의 외부 목사 초청 기도회인 부흥회가 있던 날 새벽이면 많은 이들이 이처럼 새벽의 단잠을 굳건히 떨치고 일어났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새벽기도회가 개인의 부흥을 위한 것인지 교회의 부흥을 위한 것인지는 구별이 애매했다. 모양새는 물론 죄 사함을 받고 천국 문을 여는 것이었고 당시에는 구원이 당장 기적처럼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새벽 기도회 목회자는 주님의 권능으로 소경이 눈을 뜨고 절름발이가 곧게 걸어 나가며 앉은뱅이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부흥회를 통해서 특별한 억양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신자들의 나약한 마음을 헤집어 놓았었다.
교회의 담임목사 역시 침술에 능통해 평소에 자가품이라고 불렸던 손목 안쪽에 둥글게 돋아난 부위를 침 몇 대로 가라앉혀 주기도 했다.
부흥회에 가 보면 알겠지만 평범하던 사람들도 광신도가 된 것처럼 울부짖는 모습을 보게 된다. 어떤 이는 하느님을 부르짖고 어떤 이는 알렐루야를 외치고 또 어떤 이는 방석이 깔려 있는 바닥에서 무릎을 찧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다른 이는 두 팔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하느님 아버지를 불러대기도 했다. 또 방언의 은사를 입었다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큰 소리로 외치기도 한다.
당시 기도를 이렇게 해야 하나 물으니 물에 빠진 이가 절실함을 보여야 한다고 이를 정당화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나았다는 정황은 없었다.
그래도 아무튼 부흥회에 참석하는 신자들을 보면서 속은 잘 모르겠지만 보여지는 것만으로는 참 신실하다 이런 생각을 어린 나이에 했다.
나도 나의 신체적 결함이 이번 부흥회를 통하여 회복되길 간절히 소망했다. 물론 이루지지 못했고 결국 나는 나의 신앙 부족으로 죄 많은 죄인으로 용서받지 못한 채 현재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사람들에게 신앙을 빌미로 죄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거나 죄인이라는 낙인을 지속적으로 각인시켜 놓는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됐다.
얼마 전 명강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창옥 씨가 어느 분의 질의에 2천 년 이상 이어져온 예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예수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았다. 그런데 나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고 혹은 내가 몇 마디 했다고 주위가 바뀌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오만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