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도 고급지게 꾸지 못합니다.
매번 꿈 속 배경은 허름한 집과 고등학교 때 자취하던 동네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꿈 속 배경 조차 늘 특정 틀 안에 묶여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은 전혀 엉뚱하게도 평소 기억하지도 않았던 대학시절 친구가 등장을 했네요. 시장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친구와 인근 식당에서 밥을 같이 하려고 나섰는데 주변이 온통 본적도 없던 재래시장입니다.
새로운 것을 넣지 못하니 과거의 것들만 등장하는 것인지 전생에 그렇게 살아서 그런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어린 시절 친숙했던 고무신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고무신은 정말 대중적인 것이었지요. 관리가 편하고 값도 쌌어요. 동네 온 남녀노소 모두가 학교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정말 모두가 고무신을 신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버선코가 있는 고무신을 성인남자는 흰색 고무신이 보편적이었고 아이들은 획일적으로 검정고무신이었습니다.
검정고무신과 관련한 연관어를 검색하다가 만화 검정고무신의 이우영 작가의 사망소식을 보게 된네요. 이우영 작가는 70년대에 태어나서인지 그 시절을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화를 보면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한껏 되살릴 수 있었는데 안타깝네요.
고무신은 이름 그대로 고무재질로 만들어진 신이랍니다.
신발이 한자어에서 가져다 쓴말 같기도 한데 순전히 우리말이네요. 신과발이 결합된 것으로 “걸어 다닐 때 발을 보호하고 장식할 목적으로 신고 다니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다음 사전에 표기되고 있습니다.
신은 아마 “신다”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고무신은
일체형 고무 틀에 부어서 만든 것인지 아니면 바닥과 옆라인을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어떤 고무신은 일체형 틀에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고무신은 나누어 만들고 그다음 붙였다 할 만큼 접합부위라고 느껴지는 발바닥과 옆라인이 분리되기도 하더라고요.
고무신은 신발 중 하나로 아마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기계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짚신을 대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내구성이 짚이 비하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짚신의 유효기간이 5일 정도라면 고무신은 일년은 신지 않았을까요? 이 같은 내구성으로 가격차이가 있음에도 고무신의 인기는 컸을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어린 시절 우린 이 고무신으로 참 다양한 놀이를 했습니다. 대야에 물을 받아 놓고 작은 고무신을 띄어 놀기도 했지요. 특히 고무신 한쪽에 다른 고무신 한쪽을 구겨 넣어 자동차 모양을 만들고 모래판에서 노는 게 그 당시 가장 흔한 아이들 놀이였지 않나 싶어요. 그런 면에선 부모님들이 장난감을 사준 것인지 신발을 사준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것 같네요. 땅바닥에 맨발로 돌아다니며 온 종일 신발은 장난감 자동차 역할을 했으니까요.
냇가에서 물놀이 할 때는 흐르는 물에 둥둥 띄어 보내기도 하고 그런 중에는 고무신이 물이 깊은 곳으로 이동해 가라앉거나 유속이 빠른 곳에서는 아이들이 생각했던 것 보다 빨리 고무신이 떠내려가는 통에 잃어버리기도 했지요. 나이마다 노는 방식이 조금씩 달랐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엔 모래판 위에서 모래도로를 만들고 도로를 따라 고무신 차를 주행하는 게 가장 기억이 많네요.
70년대 후반부로 갈 수록 경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운동화로 갈아타는 아이들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70년대 말까지의 대세는 고무신이었습니다. 사시사철 고무신이었는데 아마 흰색이 조금 더 비싸고 패셔너블한 취급을 받기는 했어요.
부모님들은 고무신도 사이즈가 조금씩 큰 것을 사주었어요. 고무신이 발에 맞을 때쯤이면 뒤축이 너무 닳아서 새로 사야했지요. 한 번도 제일 좋을 때 제대로 발에 맞게 신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새신은 탄력이 좋아 착용감이 좋았어요. 오래된 신발은 부드럽기는 하지만 고무재질이 갈라지고 틈새를 제때 때우지 않으면 금 새 버리게 된답니다. 적어도 장날까지는 기다려야 새신을 맞을 수 있을 텐데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지요. 신발 닳아지거나 옆에 아이가 새신이라도 신는 날이면 아이들은 싫증이 난 신발을 일부러 시멘트 바닥에 비며 빨리 닳도록 했답니다. 하루라도 빨리 새신을 신기 위해서 말이지요. 지금 부모입장에서 보면 참 안타까운 행동이었지요.
고무신은 농삿일하는 농군들에게도 장화 다음으로 좋은 신발이지 않을까 싶어요. 흙을 노상 묻히고 사는 이들에게 신발은 간편함과 청결을 가져다주었지요. 농군들이 물고를 보러 논두렁에 나갔다오면 바짓단과 신발은 풀씨와 흙먼지 이슬 등으로 매번 오염되곤 했는데 그때마다 농군들은 신발을 신은 채 개울물이나 수돗물로 한번에 오염물질을 처리합니다. 그런 다음 신발을 앞발에 걸친 채 뒤 굽을 헐렁하게 벗고 발을 들어 몇 번 터 공중에서 털면 물기가 제거되었어요. 당시 말표그림과 타이어 그림이 있던 브랜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 제품이 나오고 있네요.
이처럼 고무신은 맨발에 최적화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새신이었을 때는 모르지만 맨발로 인해 여름철에 고무신 안에 땀이 차면 발과 고무신이 따로는 노는 경우가 많아 잘 벗겨지기도 하고 신발의 가장자리와 발등이 드러나는 경계부위에는 시커먼 때가 밀려나온답니다.
온 동네 축제인 운동회 날 달리기라도 하면 제대로 신고 마무리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지요. 아마 벗겨진 신발 때문에 1등에서 꼴등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이처럼 잡일에 최적화된 고무신은 전문적인 부문에서는 역할이 제한적이지요. 발바닥을 보호하기도 힘들고 맨발에 최적화되다보니 겨울철에 양말을 신고 신발을 신다보면 발 모양새가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특히 겨울철 양말의 소재가 나일론이고 두껍기도 해서 부피감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벗어지는 경우가 여름철 땀에 의한 벗겨짐 횟수와 비등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60~70년배의 꿈 속 배경을 이야기 하다 보니 고무신과 관련한 추억이 떠올라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