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람이
파랗게 풀밭으로 변한 논바닥을 훓고 올라옵니다.
마늘밭을 지나고 보리밭 사이도 지나가 봅니다.
바람의 몸집이 커져 갑니다.
봄바람은 다중인격 같습니다.
바람이 단추가 채워져 있지 않은 셔츠사이를 지나면서 칼날 처럼 차가운 섬뜩함을 남깁니다.
나를 기억해....
아침의 바람이 풀숲에 갖혀 있습니다.
아침의 바람은
언덕을 비집고 올라오는 태양이 낯선 것 같습니다.
아침 바람엔 잠기운이 가득합니다.
아침 바람이 엊저녁의 숙취처럼 몸이 무거운 것 같습니다.
오후가 되면 바람은 아침 냉기를 떨쳐내며
본색을 찾습니다.
오후의 바람은 장난꾸러기 같습니다.
햇볕이 좋은 오후의 바람은 따뜻한 손길이 됩니다.
볼 살을 흔드는 손길에 눈이라도 감아 버리면
바람은 멀찍이 보리 잎들에 회오리 모양을 새기며 달아납니다.
풀잎을 흔들어 보다 성에 차지 않는지 마늘밭과 보리밭 사이를 누벼 보기도 합니다.
바닥을 돌아다니던 바람은 연초록 잎을 가진 미루나무 꼭대기의 구름도 밀어 내 보고
언덕위의 구름도 저 멀리 보내버려봅니다.
피곤해진 바람이 한결 누그러졌습니다.
잠든 아가의 순결처럼 고른 파동을 내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