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창밖을 지나는 가로수마저 눈을 어지럽게 하고 머릿속을 정신없게 하는 듯하다. 플라타너스 가로수만 지나면 중간 기착지가 나오겠지. 속에서 느물느물 하게 미끄덩한 느낌으로 무언가 계속해서 위로 올라오는 느낌일 때와 잠깐만이라도 평온해질 때의 느낌은 여기서 내릴까 아니 좀 참아볼까를 결정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준다.
중간기착지에 도착할 무렵 또 다시 멀미가 시작되면 내 몸은 내 의지와 다르게 한쪽 다리부터 의자 밖으로 내어 놓고 내릴 준비를 한다. 아직 가야 할 종점이 멀기에 버스표 값이 아깝기는 하지만 지금 내리는 것이 내가 이 힘겨운 고통에서 살아남는 길이라 여겼다. 하지만 잠시 잠깐 울렁거림 잦아들고 조금이라도 참을 만하면 그래 한 정거장만 더 참아 보자 하고 이를 악물고 버티고 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후회가 밀려온다. 그렇게 쉬는 정류장마다 내려야지 혹은 참아야지를 반복하며 한 정거장 한 정거장 이겨내다 보면 몸은 정말 만신창이가 되고 다시는 버스를 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또다시 단전 밑에서 울렁거림이 시작되면서 묵직한 것이 목구멍을 개방시키고 급작스럽게 밀려 나오려고 한다. 창백한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뜨거운 열기가 몸을 감싸주면 깜박 정신줄까지 놓아버리는 상황이 온다.
이번에도 간신히 가까스로 밀어 넘겨보지만 반복되는 울렁거림으로 순간 또 그놈이 찾아 올라올 것 같다. 온몸이 경직되고 그 사이 온몸의 땀구멍이 개방돼 연신 정수리부터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온다.
오직 생각은 이 버스가 쉼 없이 달려 단 1초라도 빠르게 정류장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에 꽂혀있다. 그동안 익숙하게 지나쳐 왔던 시군 단위의 정류장 풍경도 관심이 없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버스 안은 그 시간대에 해당 지역 정류장에서 승차하는 익숙한 얼굴들과 그리고 고향을 다녀가면서 바리바리 짐을 한가득 씩 짊어지고 승차하는 사람들로 버스 안은 만원이 된다.
에어컨을 풀가동해도 전혀 냉기를 느낄 만한 상황이 되지 못했다. 예전 직행버스는 입석과 좌석의 구분이 없었다. 더욱이 안타까운 것은 이동공간이 입석 승객들로 가득 메워져 중간 기착지에 내릴 선택지까지 뺏어가 버린 듯하다. 버스 안의 열기는 갈수록 고조되고 좀 전 보다 더 고약해진 엔진 연료냄새는 나를 그로기[groggy] 상태로 몰아갔다. 결국 토하라는 것인가!
그런데 그 상황에서도 나는 토사물을 토해내고 개운해지려는 마음과 토사물을 쏟아냈을 때의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사이에 두고 시름하고 있다. 내성적인 나의 성격 탓인지 아니면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끝내는 가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어 버린다.
버스가 회전구간을 지나면서 입석 승객들이 좌석 승객들의 얼굴 위로 몸을 기울인다. 뜨거운 열기는 그러지 않아도 쏟아낼 듯 움찔거리는 입 주변에 아찔한 터닝포인트를 찍고 옭아맸던 정신을 과감하게 풀어헤친 다음 마침내 노르스름한 구토물을 검은 비닐봉지 속에 쏟아냈다. 그 냄새는 신 맛인 듯 발효음식인 듯 보이지 않은 분자를 버스 안 이곳저곳 급속히 퍼뜨렸다. 냄새의 당사자인 나는 창피한지 어쩐지도 모른 채 멍한 상태로 의자에 머리를 깊숙이 박고 안타까운 호흡을 고르는 중이다.
이처럼 어린 시절엔 참 멀미를 많이 했다.
멀미가 어느 때부터 시작된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날이 떠오른다. 아마 서산버스종합터미널이었을까? 내가 여섯 살 쯤이었던 그 비 내리는 밤 온 땅이 검고 축축했던 그날 밤 할머니와 큰 댁이 있었던 태안에 갈 때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날 할머니는 버스 안에서 말캉말캉한 감을 사주셨다. 몸 컨디션에 따라 먹을 상황인 것을 구분했어야 하는데 그날은 그러지 못했다.
먹은 것은 비닐봉지와 창밖으로 되돌려졌다. 그날 이후부터 고등학교 유학 시절 버스 바닥에 눕고 싶었던 그날까지 나의 멀미는 계속된 것 같다.
울렁거림이 시작되면 얼굴은 창백해지고 땀샘이 열린 듯 온몸은 땀으로 푹신 젖어 갔다.
그 긴 고통의 터널을 무엇에도 비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삶이 그리도 처절할까...
80년대의 타지 유학생활은 참 고되다. 집에서 다닌다고 크게 좋은 환경일 수도 없지만 말이다.
한국인으로서 김치는 자취를 하는 동안에도 핵심 중의 핵심이 됐다. 그렇기에 스스로 김치를 담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매주 먹을 김치를 공수해 와야 하는 데 특히 나와 같이 차멀미를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공수과정이 참으로 지난한 고역이었다.
한 번은 여학생 옆자리에 앉았다가 잠이 들어 여학생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잔적도 있다. 화들짝 놀라 깨어 창밖만 부끄럽게 쳐다보며 갔는데 도착지에서 내린 여학생이 가지 않고 기다린다.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