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한 마늘로 바꾸어 먹은 아이스께끼

by 이상훈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양력 6월의 땅은 덥다. 봄 가뭄이라도 있는 해이면 땅은 쪼그라들고 갈라지고 지난해 파종한 마늘이나 보리도 별반 풍성함을 갖기 어렵다.

영화 “크게 될 놈”을 보면 섬 지방 고등학교 아이들이 남의 마늘 밭에서 “마늘 서리”를 해 가지고 육지에 있는 디스코텍을 놀러 간 장면이 나온다. 설마 마늘을 얼마나 서리를 했길래 육지로 놀러 갈 돈이 됐을까? 엄마는 마늘서리로 유치장에 들어간 아들을 꺼내오기 위해 집안의 유일한 부동산인 밭을 처분해야 했을까? 어쨌든 그 장면을 보면서 어린 시절 마늘을아이스크림과 바꾸어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5월이면 앞치마를 걸치고 옷핀으로 마늘종을 뽑던 일이나 마늘 잎사귀를 구워 먹던(칼솟 같은 느낌) 일 등도 어렴풋하다. 다 잊은 것 같은데 잠시 잠깐의 일들이 일 년에 몇 차례 없던 일들이 설마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했던 것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각화되어 간다. 마치 죽음을 앞둔 이들이 가수면 상태에서 과거의 일들을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처럼 기억하듯이 말이다.

나도 그때는 엄마와 헤어지면 어떡하나 아니 엄마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살지 정말 발생하지도 않을 걱정을 태산같이 어쩌면 정말 그 어린 나이에도 자기중심적으로 하고 살았던 적이 있다. 물론 요즘 장례식장에 가면 죽은 자를 추념하기보다는 남은 유족이 어떻게 살지 더 걱정하듯 인간은 참 언제 어디서나 자기중심적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다행히도 그렇게 걱정했던 어머니는 이제 미수(88세)를 앞두고 계시다.


유월.

장마철을 앞둔 초여름의 땅은 메마르고 바람은 건조하다. 봄의 햇볕과 바람은 그래서인지 피부에 절대 악이다. 한낮의 더위는 8월의 더위에 버금가지만 낮은 습도로 나무그늘에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있다. 햇볕에 드러나지 않은 땅은 습기를 머금어 보드랍다. 오뉴월이면 햇볕이 비추지 않은 굴뚝 뒤나 담벼락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햇볕과 그늘 밑을 오가면서 열심히 땅바닥에 무언가를 그리기도 한다. 비석치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뒤란에 핀 골담초(약초성분이 있음) 꽃잎을 하나 가득 따 먹기도 했다. 열심히 논 덕에 아이들의 옷은 항상 땀에 절어 있다. 요즘 같이 매일 갈아입을 형편도 못되고 형색이 정말 꼬질꼬질했을 듯하다.

러닝셔츠 위로 드러난 형색을 보면 흙먼지와 땀이 버무려져 목 부위의 주름이 진 살에는 길게 시커먼 땟자국이 줄무늬같이 늘어서 있고 머리는 대부분 까까머리다. 봄 햇빛과 바람에 노출된 얼굴은 모두가 까무잡잡해 때와 피부의 색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옷차림 역시 패션인 냥 윗도리가 어쩌면 그렇게 똑같았을까! 낡고 늘어난 홑 러닝셔츠 바깥으로 드러난 앙가슴이 유난스럽다.

딱 그 절이다. 상업용 냉장고가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탓에 학교 앞의 문방구 아이스크림통도 동네 구판장의 아이스크림 통도 모두 드라이아이스 한 덩어리가 들어있는 노란색 고무주머니 하나씩을 보냉재로 사용했었다. 드라이아이스주머니 위에 바로 뚜껑을 덮고 아이스크림이 동날 때까지 버티어 내야 했다. 당시의 아이스크림은 그래서인지 단단함이 부족한 듯한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이스크림 통 재질은 외부가 나무나 철판으로 되어있고 내부는 거울 같은 느낌의 재질이었다. 내가 한 번은 동네 구멍가게 아이스크림통에서 아이스께기 하나를 꺼내 들고 드라이아이스를 넣다가 그 거울 같은 보냉재질을 깨뜨려 아버지가 피해를 보상해 준 적도 기억난다. 유리재질이 다 깨져 아이스께기를 모두 버려야 했던 쓰라린 기억....

마늘이 나오는 이맘때쯤이면 파란색 페인트 칠을 한 나무 재질의 아이스께끼 통을 짐자전거 뒷자리에 실은 장사꾼이 동네에 등장해 “아이스께끼”,“아이스께끼”하고 우렁차게 불러 젖히며 누비고 다녔다. 그러면 우리는 아이스께끼 장삿군이 어드메 쯤 오는지 살 던 곳이 들판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트인 개활지를 찾아 구글로 스캔하듯 위치를 가늠하고 우리에게 도착할 시간을 측정했다. 그리고 그 당시 흔하게 지나다녔던 엿장수나 상이군인과 참 많이 비슷했다.


뚜껑을 열면 주황색이나 붉은색 색소를 넣어 만든 달착지근한 아이스께기가 비닐봉지에 싸여 한 가득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생긴 모습이 전부 바형태였을까 싶다. 물론 고학년이 되었을 때는 보통명사가 된 쭈쭈바가 당시 유명했던 고인돌의 만화주인공이 그려져 출시되었지만 저학년 시절만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읍내의 아이스께기 공장에서 나온 듯하게 이름도 영실업이란 영세업체가 만든 색소와 당분이 듬뿍 들어있는 그런 바 형태가 소풍날이거나 운동회 날이거나 하는 특별한 행사 때 짐자전거(짐을 실을 수 있도록 바퀴가 보통 것 보다 두껍고 안장뒤의 짐칸이 크고 묵직하게 제작된 자전거) 뒤에 실려 우리를 쫓아다녔다.

밀이나 보리를 수확하는 때이면 태양의 고도도 가장 높다. 왜냐하면 그 시기는 낮이 가장 긴 절기 상의 하지를 품고 있는 때였기에 말이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이면 동네에 나타난 아이스께끼 장사꾼은 어쩌면 천사일지도 모른다. 장사꾼 입장에서는 아마도 공장에서 재고처리를 위해서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이스께끼를 목청껏 부르고 다니는 장사꾼이 넓은 마당에 들어서면 우리들은 부모님들 몰래 마늘 밭에 나가 다 자란 마늘을 10여 개 캐 바구니에 담아 장사꾼에게 건넸다. 이를 테면 물물교환방식의 거래인데 몰래 서리하듯 캔 마늘을 아이스께끼 장사꾼에게 가져다주면 아저씨는 바구니 대여섯 개의 바형태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돈을 주고 산적이 별로 없으니 아이스께끼의 개당 가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또 그 아저씨와의 거래품목은 마늘로 한정되지는 않았던 듯싶다. 무슨 엿장수도 아니고 비료포대를 가져다주어도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었다. 물자가 귀해서 그런 것인지 몰랐다. 그 아저씨는 우리 소풍 길에도 따라오고 동네의 구멍가게에도 아침마다 아이스크림을 공급했다. 영실업이 만든 같은 상표의 아이스께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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