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방과 중문 그리고 마당으로 난 방문 문지방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맨 소매 메리야스와 반바지가 복장의 전부인 아이들은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방바닥에 엎드려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있기도 하다. 대문 앞 문지방에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도 있고 방학을 맞았던가 하여튼 아이들의 무료함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러다 부모님이 절에서 가져왔는지 연옥도가 그려진 낱장의 그림을 보고 경악을 했다. 끓는 기름에 담기거나 거대한 장도로 머리가 잘리거나 하는 등의 잔혹한 그림이 한가득이다. 영화 신과 함께에 나온 지옥장면의 대부분이 거기에 담겨 있다. 물론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려진 것임에도 어린 시절 나의 마음속에 전달된 충격은 거대한 것에 얻어맞은 듯한 것이었다. 죽어도 죽을 수 없는 그렇기에 현세에도 착한 일을 많이 하라는 그림은 누구를 교화시켰을까 싶다. 현세의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은 등한시하고 죄의 종목을 구체화하고 가격을 매겨 절을 배불리 게 하는데 쓰이지는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요즘은 더 많다.
하지만 젊은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그림은 상당히 충격적이어서 사후의 세계가 마냥 두려웠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죄와 연관된 듯싶기도 했다.
한편으론 이런 그림이 아니면 인간들의 속성을 바꾸지 못할 것 같기에 현세에서 착하게 살라는 목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실수도 많이 발생하고 권력이 커질수록 인식하지 못하는 죄를 범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세상사다.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이들 특히 전쟁을 통해 끔찍한 일을 벌이고 재물을 취하고 하는 이들은 모두 권력자이다. 또한 전쟁이 아닐 경우에도 권력자들은 온갖 이유를 붙여 세금을 늘리고 정적을 감옥에 가두고 전쟁을 일으키는 잔혹한 일을 한다. 하다못해 권력자는 아니라 하더라 동네에서 방귀 꽤나 뀐다는 이들은 적지 않니 재물을 탐함에 있어 그렇게 일반적이지는 않다. 상도덕을 헤치거나 과한 이윤을 남기거나 하는 것들은 너무 일반적이어서 죄라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 것에 반해 일반 소시민의 죄는 어떤가 경중을 따지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이다. 그래봐야 은행 대출금을 제 때에 갚지 못하거나 공과금을 내지 못하거나 빌은 돈을 갚지 못해 거짓 변명을 하거나 술자리에서 예전의 무공을 자랑하거나 부모와 대립하거나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업무를 게을리하거나 하는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특이 성향을 지닌 이들의 범죄는 차치하고 말이다.
자신의 죄에 대한 반성은 아마도 부모와 국가 및 이웃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소시민만이 가진다.
종교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아마도 이런 종류의 세뇌와 통치를 바탕으로 혹세무민 하고 탄압하는 것이 아닐까? 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것은 드러내 돋보이게 한다. 죄의 규모를 확대하고 면죄부를 주기도 한다.
일상에서 흔히 말하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존엄을 크게 훼손한다. 정말 어린 시절에는 엎드린 김에 청소라도 해라 하는 말도 있을 정도로 아이들이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산업화되고 생산량이 증대되었지만 섬유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임금은 좋아지지 않았다. 그것도 백여 년간 말이다. 재화를 나누고 형평성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냐? 세계인들의 공공재인 공기와 자원을 특정인들이 재산권으로 독점하고 하다못해 지구밖 달까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자본가들은 일반 소시민을 혹은 현재의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선진국들은 탄소배출을 거의 하지 않는 후진국들을 어떻게 보는가? 여기에 종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덧붙인다면 누구의 죄가 더 큰가? 오히려 없는 이들의 죄만 더 부풀려지고 착취당하고 하지 않는가?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이주해 간 신대륙에서 노동자들은 청교도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투철한 도덕과 근면을 요구받았던가?
신대륙에 이주한 많은 어린이들은 죄의 용서를 구해야 했고, 용서를 구했음에도 죄의 사함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고 한다.
이제 너무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 필요는 없다. 당당하게 살아가고 만나고 싶지 않은 이는 피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은 가지 않아도 된다. 일반 소시민들이 너무 이웃을 의식하고 사는 것도 그렇게 좋은 삶은 아니다.
피해를 주지 않는 다면 그리고 타인의 평가에 절절매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죄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사마리아인처럼 어려운 이를 보고 도와주는 것이야 필요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