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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날

by 이상훈

23년의 마지막날 내린 폭설이 나를 추억으로 이끌었다. 내 기억 어디쯤인가 이런 기억이 남아 있다. 사위가 조용한 날 개 짖는 소리가 멈추면 내 귀에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잔을 마시고 한 참을 지난 다음 창밖을 내다봐도 눈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내린다. 언덕 위의 집들은 눈 속에 꼼짝 않고 누워있는 것 같다. 간혹 연세가 있는 어른 집에서나 집 앞의 눈을 치우는 대빗자루 쓰는 소리가 들리지만 금세 치워진 자리는 흰 눈으로 빗자루가 지난 자리를 채웠다. 눈은 좌우로 흔들거리며 떨어지기도 하고 빗방울이 슬로모션처럼 떨어지는 모양으로 마당에 내려앉기도 했다.



잠시 마당 앞 소나무 옆에 서 보기도 하는데 짧은 순간 눈송이가 머리 위와 어깨 위에 수북해진다.

눈이 오면 누구도 밟지 않은 곳에 풀빵 모양의 둥그런 원을 그려보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이름을 써보기 했는데 아직은 어린 시절처럼 유치해지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낮은 경사지에서도 짚을 푹신하게 넣은 비료포대를 타고 손이 굽을 때까지 놀기도 했는데 말이다.

다시 커피포트의 물 끓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잠잠해지고 하늘 공간을 빈틈없이 채운 눈송이가 사각사각 각기 다른 모양의 아스팔트 슁글이나 징크소재의 지붕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커피 한잔을 더 내리고 텔레비전을 켜니 교통사고 관련 뉴스가 잇따른다.


오늘 나는 집에나 갈 수 있을까?

새벽녘 친구의 말을 듣고 차를 마을 입구 평지에 내려다 놓기는 했는데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것은 50대 이후 처음이어서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드러나게 했다. 휴대폰에 경보음이 계속 울려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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