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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아이(1)

T형 같지만 F형인 그 아이

by 이상훈

나는 참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다. 많은 부분에서 경쟁력이 없다. 셈도 느리고 당당함도 없었다. 소심하고 어른들을 두려워하고 그랬다. “다른 집 아이들은 친척 품에 잘도 안기더만 우리 집 아이들은 왜 이리 데면데면 한지 모르겠다.”하신 아버지 말씀이 생각난다. 우선 남과 비교하는 것도 큰 일 날 소리였고, 어른들에게 예의 바름만 강조하고 안음을 받았던 기억이 없는데 어디 누군가에게 덥석 안긴다는 게 쉽지 않은데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쓸 말이지만 행동과 말은 오랜 습관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하루아침에 경직된 태도가 바뀌지는 않는데 그런 말씀을 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셈도 느리다고 했는데 나는 외형만 T형이지 전형적인 F형 감성이다. T형이 협상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으니 T형을 흉내를 내야 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남들은 계산적이고 빈틈이 없다고들 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말이다. 어렸을 적 구구단도 아마 나머지 공부를 하면서 익혔던 기억이 있다. 이 처럼 수 개념이 없다 보니 다른 방식으로 수 개념에 강한 척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무조건 외워서 맞히려고 한 성향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여전히 개념이 없을 때가 많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훨씬 더 많다. 특히나 어렸을 적 나는 말도 어눌하고 혹여나 실수할까 말하는 곳에 잘 참여하지 않았다.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그런 듯싶다. 아이들의 의견이란 게 딱히 그른 것도 없고 딱히 맞다 할 만한 것도 없다. 다만 그 당시 많은 아이들이 ‘코흘리개’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나는 좀 더 깔끔하다고나 할까 하는 차이가 있었고, 옷도 제법 단정하게 입어 동네 할머니들이 자기 집 개구쟁이 손자와 종종 비교하는 경우도 흔치는 않았지만 일어나기도 했다.


요즘 보면 말이란 그저 입이 생겼으니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 같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는 “모든 것이 연습이다. 연습하지 않으면 자연스럽지 않다. 나이가 먹는다고 갖춰지는 것이 아니다.”이다. 노는 것, 마시는 것, 말하는 것의 방식이나 품위 그리고 단어 등은 철저히 연습되어야 평소에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다.

어쩌면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말을 좀체 안 했던 나는 좀 둔한 아이로 평가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같은 시대의 회사 생활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면 바보취급 당하기가 딱 십상인데 말이다. 말이 소중한 전달 매체이고 소통의 창구이기는 하지만 의견을 물을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술자리나 이런 곳에서 쉬지 않고 뱉어지는 것들은 공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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