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어서 중정이 있는 집으로 마실을 가 저녁 9시 뉴스가 시작될 때까지 티브이를 보는 게 일인 때도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대부분 친구가 있는 집으로 놀러 가는 게 보통이었고 토요일에는 토요명화나 바니걸스나 이은하, 조용필 등이 출연하는 토토즐은 어른들의 채널 선택으로 불필요하게 시정했고, 어린이 만화영화 특히 설 및 추석 명절에 보여주는 로봇태권브이 영화는 반드시 보아야 할 목록에 포함됐다.
200호가 넘는 시골마을에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가구는 열대여섯 가구 정도였지만 매년 텔레비전을 설치를 보여주는 안테나가 지붕 위에 멋지게 폼 잡고 있는 집은 늘어갔다. 텔레비전이 어떻게 설치되는지는 옆집을 보면서 알게 됐는데 제일 중요한 게 안테나가 스러지지 않도록 철사 등으로 동여 메고 텔레비전 수신이 잘 되도록 안테나 방향을 잡아주는 일이었다. 아울러 텔레비전 설치로 인한 아이들의 들뜸이 기억에 남는다. 웃는 것도 아니고 자랑스럽다고 광내는 것도 아니고 뻐기는 것도 아니고 그 모든 것이 조금씩 섞여 있는 표정말이다. 동네 아저씨가 직접 자전거에 텔레비전을 싣고 오기도 했는데 매번 남의 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라. 실제 집에 텔레비전을 설치하면 그동안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이 집 저 집 전전하면서 텔레비전을 보아 오던 즐거움은 오히려 반감되기도 했고, 텔레비전에 대한 집착이 오히려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논밖에 없는 시골에서 방학이 되면 놀 거리도 마땅하지 않고 친척집을 가지 않는 한 무료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물론 부모님 일손을 돕는 날도 있지만 그것이 재미난 일은 전혀 아니었고 텔레비전만큼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것은 없었다. 지금 같은 OTT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24시간 방송을 한 것도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놓기 전까지 나는 주로 라디오를 청취했는데 청소년 프로그램도 많았고 성우들이 연기하는 라디오 연속극도 참 재미있게 들었다. 그것도 대부분 AM 방송으로 말이다.
가끔 우리가 자주 가는 친구 집에 그 아이의 친척 어른이 방문이라도 하면 이놈들은 왜 남의 집에 풀빵구리 드나들 듯하느냐며 눈짓으로 욕을 하기도 했다. 예전엔 어른들도 일단 친척집에 방문하면 며칠을 머물다가 돌아갔다. 요즘같이 몇 시간 머물다가기엔 교통편이 너무 좋지 않기도 했고 말이다. 문제는 웬만큼 친한 집이면 집주인의 허락 없이 채널권을 확보해 어른이 보기를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만화영상을 즐겨봤다. 주로 봤던 만화 영화로는 개구리 왕눈이, 황금박쥐, 미래소년 코난, 서부소년 차돌이, 짱가, 요술공주 세리, 마징가 Z, 자동차 경주를 주제로 한 만화 등 지금 생각해도 술술 제목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다.
참 눈치 없게 그러나 친구가 있기에 맘 놓고 어른들이야 좋아하든 말든 참 즐겨 보곤 했는데 그 집주인이나 손님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그럴 정도로 동네 어른들의 참을성이 대단했다.
당시의 어른들의 상식이 지금보다 부족할지는 몰라도 사람 사는 예의범절이나 인정은 훨씬 더 나았다고 보인다. 일례로 이웃에 문제가 생기면 십시일반 갹출하는 등 상부상조하는 것도 특히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각자의 형편에 맞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배울만 하다.
사람들은 습관대로 삶을 살아간다고 지금 우리의 행동양식, 말하는 것, 옷 입는 것, 생활 편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많이 달라지고 편해졌어도 정신적인 여유는 없다. 늘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는 듯 한 행동이나 생각들이 불편하다.
여러 명의 다른 집 아이들이 앉았다 간 자리 아마 그 당시에도 감기나 이런 질병들이 있었을 텐데 그냥 그렇게 어울려 지내도록 해주고 또 그것을 참아 내주고 그런 것들이 참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해가 바뀌어 갈수록 지붕 높이 세워진 안테나가 있는 집들이 늘어갔다. 당시의 텔레비전은 무슨 장식장같이 브라운관은 크지 않았는데 지금으로 보면 브라운관을 둘러싼 장식장으로 인해 40인치 티브이는 될 정도로 압도적 크기를 보여줬다. 주사선 방식의 흑백 브라운관은 가끔 줄무늬가 지기도 했고 안테나가 바람에 흔들리면 영상신호가 끊기는 날도 많았다. 여름에는 마루에 앉거나 문지방에 비스듬하게 앉아 어느 때라도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는 것 마냥 보기도 했다. 친구의 어머니가 유별나게 차갑게 대하는 집이 있는 가 하면 아이들이 다 그렇지 하며 거부감 없이 대하는 집이 있다. 어느 집을 가서 보게 될지도 중요했다. 우선 창호지 밖으로 텔레비전 불빛이 새어 나와야 가능한 일이다. 혼자 가서 보는 일은 더욱 힘들고 그 집에 아이들이 없으면 불편했다.
조부모가 있는 집은 그나마 나은 편이고 부모가 젊으면 물어보는 것이 많아 피곤했다. 어떤 눈이 오는 날이었을까! 너무 늦게 귀가한 탓에 그러고 보니 내가 제일 늦게 귀가를 했는데 부모님으로부터 심한 꾸중이 내려왔다. 아마 매타작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부모님을 나쁘게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고 말이다.
이제는 그것 조차 추억이다. 물론 지나간 것은 다 추억이지만 말이다. 그때도 참 명언이 하나 있었는데 꼭 중요한 장면에서 화면이 “지지직” 거린다는 것이다.
김일의 프로레슬링이나 홍수환 선수의 타이틀 전이 있는 날이면 마당이면 마당, 안방이면 안방이나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랑채가 있는 집에서는 어른들이 빙 둘러앉아 이야기 꽃도 피고 안채에서 내어 놓은 찐 고구마를 동치미 김치와 같이 먹었던 추억도 깊다. 지나간 것은 다 추억이다.
어떤 어른이 될지가 그렇게 궁금했는데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무실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그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