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분식을 유난히 강조하던 시절이었다.
점심시간마다 도시락에 보리쌀이 섞여 있는지 감독이 있었고, 학교 앞 문방구 벽에는 “쥐를 잡자”,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같은 포스터와 국수 그림이 그려진 혼분식 장려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까. 교실 커튼을 부반장 아이의 엄마가 기증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부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인사하는 방식이 유난히 독특했는데, 어느 날 도시락 반찬으로 ‘닭광’이라 불리던 노란 무를 가져온 적이 있다. 처음 보는 노란색 무라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무척 궁금했다.
요즘이야 김밥집이나 중국집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시골집에서는 그런 무를 만들어 먹은 기억이 없다. 외지에 살면서 중국집 옆에서 무를 다라에 담아 삭혀 만드는 모습을 얼핏 본 적은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방법은 모른다.
특히 4학년 무렵이 떠오른다. 짝꿍 아이에게서 보리밥 몇 알을 빌려 혼식처럼 포장했던 기억. 반찬은 뭐였더라. 아마 멸치조림, 김치볶음, 콩나물무침이 주류였을 것이다. 어쩌다 밥 위에 황금빛 노른자가 빛나는 계란프라이가 올라간 날도 있었다.
그때는 계란이 집집마다 키우던 닭이 낳아주는 것이어서 귀할 수밖에 없었다. 반찬통이 따로 없어 커피 유리병이나 커피 프림 병에 반찬을 담아 갔고, 반찬 국물이 새어 교과서를 붉게 적시는 일은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