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하던 해가 1979년이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숫자는 흐릿한데 장면은 남아 있다. 교실 창으로 들어오던 빛, 분필 냄새, 책상에 엎드린 오후의 기척 같은 것들. 내 기억은 늘 이렇게 이야기보다 이미지로 남아 있다. 한 줄로 이어진 서사가 아니라, 파편처럼 흩어진 순간들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진득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일,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은 늘 힘에 부쳤다. 대신 어떤 순간에는 유난히 또렷해졌다. 소리, 표정, 분위기 같은 감각이 한꺼번에 들어올 때면 생각이 번쩍 살아났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두고 감각적이고 순간적이며, 오래 지속하는 데는 약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의 학교는 그런 나에게 친절한 공간이 아니었다. 죽어라 필기하고, 외우고, 버텨야 했다. 오래 붙잡고 있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뒤처졌다.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나는 남들처럼 공부를 붙잡고 있지 못할까. 왜 이렇게 집중력이 없을까. 그 질문은 늘 나를 향해 있었고, 환경을 향한 질문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중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집중의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나는 혼자 고요히 앉아 있을 때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더 또렷해졌다. 대화를 나누며 생각이 정리됐고, 관계 속에서 이해가 깊어졌다. 고립된 공간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보다 점점 무디게 했다.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깨닫게 된 건 딸아이를 보면서였다. 딸은 방 안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아이가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말을 주고받고,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알게 되었다. 나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을. 다만 우리는 늘 기준 밖에 있었고, 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자라던 시절에는 이런 성향을 설명할 언어도, 허락할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부족하다고 오해한 채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파상된 기억은 삶을 성기게 산 흔적이 아니라 한 순간 한 순간을 감각적으로 살아낸 증거처럼 느껴진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왜 나는 이 모양일까,라는 질문을.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아, 나는 이런 리듬으로 살아온 사람이었구나.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으로 기억하고, 고독보다 관계 속에서 살아나는 사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 나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