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원서를 넣고 나면 집안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소리가 사라진다기보다, 말을 아끼게 된다. 다들 이미 할 말은 다 했다는 얼굴이다.
아침 밥상에서 아버지는 신문을 펴 놓고 같은 면만 세 번째 보고 있고, 어머니는 국을 데우면서도 불을 줄였다 키웠다 한다. 아이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손가락만 위로 아래로 움직인다.
“추가합격은 언제쯤 난다더라?”
어머니가 물으면,
“학교마다 다르지.”
아버지가 대답한다. 대답은 짧고, 더 이어지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묻지 않는다.
묻는 순간 표정이 달라질까 봐서다. 이미 아이는 수시에서 한 번 떨어졌고, 그날 이후로 웃는 얼굴을 덜 쓰게 됐다. 웃으면 괜찮은 척하는 것 같아서, 안 웃으면 더 걱정될 것 같아서, 부모는 그냥 보는 척만 한다.
점심쯤 되면 어머니는 괜히 정시 설명회를 다시 찾아본다.
이미 다 끝난 설명회다. 합격선 표를 다시 보고, 작년 충원 숫자를 다시 본다. 숫자는 변하지 않는데, 보는 사람 마음만 바뀐다.
“너 점수로는 가능성은 있대.”
그 말은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기도 하고,
부모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기도 하다.
아이도 안다.
가능성과 결과가 다르다는 걸.
저녁이 되면 집 안에 TV 소리가 조금 커진다. 조용하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뉴스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드라마도 줄거리를 놓친다. 다만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필요할 뿐이다.
아버지는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
“합격이 인생 다는 아니야.”
그 말을 하는 순간, 본인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래도 말은 해야 한다. 말이라도 꺼내지 않으면, 집 안이 너무 팽팽해지니까.
아이 방 불이 일찍 꺼진다.
잠이 와서가 아니라, 더 할 일이 없어서다. 공부도 끝났고, 결과도 아직이다.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사람은 눕는다.
부모는 그 불 꺼진 문을 한 번 더 본다.
괜히 문 앞을 지나가며, 발소리를 줄인다.
1월은 그렇게 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집 안에서는 매일 작은 계산과 걱정과 말 아낀 숨이 오간다.
합격 발표 날이 오기 전까지,
이 집은 계속 “보통”인 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