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고랑을 찾는 이는 다양하다. 아이들은 낮 동안 갯고랑을 순례하고 이합과 짱둥어를 잡는다. 갯둑주변은 송장 색상의 메뚜기가 떼 지어 날아다닌다. 잠시 발밑을 보면 갯고랑에 뚫린 수 만개의 구멍들 사이로 짱둥어가 들락거리고 “농게”, "황발이"가들락거린다. 재수가 좋은 날이면 민챙이도 잡아와 아궁이에 구워 먹기도 하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낮동안 아이들이 다녀가고 물때에 맞춰 들어온 배에서는 갑오징어가 내려지기도 하는데 갑오징어 안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흰색의 넓적한 뼛조각이 하나 들어 있다. 약재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상처부위를 소독하는 것으로 쓰였다는데 내가 어릴 적에는 그 흰색의 뼛조각으로 남의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해댔다. 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집들의 담벼락엔 이렇게 검은색 크래용이나 크래용을 갖지 못한 아이들이 갑오징어 뼛조각으로 빚어낸 정체 모를 추상화들로 가득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고학이면 누구와 누군가가 사귄다.라는 글을 넣기도 하고 글을 처음 배운 아이들에겐 호기심 넘치는 낙서장이 되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일을 마친 농군들이 낫을 씻고 흙을 털어 내는 등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웅덩이의 고인물에 몸을 씻는 의식을 갖는다. 간혹 그물을 가지고 나온 이는 만에 들어온 바닷물에 그물을 펼쳐보기도 하고 어떤 이 지난날 쳐 놓은 통발에서 숭어나 새우 등 반찬거리를 건져내기도 했다.
바람이 없고 따뜻한 날 밤에는 청춘남녀들이 갯가의 억새밭에 모여든다. 시골에서 남의눈을 피해 남녀가 만나 밀어를 나눌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전화가 없으니 약속 한번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들을 응원하는 것은 밤하늘의 별이나 달이었지 싶다. 왜 그날의 달은 집에서부터 그들을 따라와 지켜봐 주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머리 위에서 사랑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 같다. 갯고랑마다에는 큼직한 수로가 연결되기도 하는데 수로를 통해 농업용으로 사용되었던 물을 쏟아내는 커다란 관이 묻혀 있다. 지표면에서부터의 깊이가 5미터에 이르기도 하고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그곳에서는 보통의 소리보다 몇 갑절 무겁고 울림이 있는 물소리가 으스스하게 들려왔다. 꼭 귀신의 울음소리 같았다. 이웃동네에서 한잔 걸치고 들어오는 이는 이소리를 나침반 삼아 갯고랑이 멀지 않음을 알았을 것 같다. 당시 갯고랑 인근에도 몇 가구의 집들이 흩어져 있었고 이들의 삶도 술을 마신 이처럼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새벽녘이면 땔감이 부족한 집의 가장들은 갯벌에서 나오는 갈대를 베어다 밥을 하고 물을 끓였다. 군복 같은 바지와 역시 군복 같은 윗도리를 입고 수건을 목에 동여 멘 모습으로 낫과 지게를 짊어지고 나간다. 간혹은 그 모습에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있어야 그림이 됐다. 한 시간 정도 작업을 하면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갈대만 한 짐 가득하게 집에 돌아왔다.
갯고랑은 한이 많다. 많은 이가 목숨을 잃기도 하고 목숨을 내어놓기도 했다. 술을 먹고 들어온 이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기도 하고 낮에도 이합을 주우러 간 옆집 아이가 빠져 죽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바다에 원한이 맺힌 처자의 혼이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 밤과 낮을 달리하여 많은 이들이 갯벌을 찾았다. 그것은 삶이기도 하고 숙명인 듯했다. 슬퍼도 가야 했고 무서워도 가야 했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