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순댓국이 당길 때가 따로 있나.

by 이상훈

요즘 들어 일주일에 한 번은 순댓국을 먹는 것 같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무실 동료들이 많다 보니 생긴 일이다. 사무실 근처에만도 소문난 순댓국 집이 서너 곳 있다. 돼지뼈와 돼지머리 등 돼지 부산물만 이용하여 뽀얀 국물을 자랑하는 집이 있는 가하면 소뼈를 함께 우려낸 집도 있고 전체적으로 소뼈만 사용하여 국물 맛을 내는 집도 있다. 어느 집은 닭뼈를 함께 넣어 국물의 감칠맛을 높이기도 한단다.

오늘 점심시간에 들른 순댓국집은 메뉴판에 돼지 내장 화란산이라고 쓰여 있다. “아주머니 저희 고기만 4인분 주세요?”
고기만 4인분은 순대 없이 머리 고기 등만을 넣어달라는 소리다. 가끔 이 집 순댓국엔 순댓국 안의 당면 순대가 퉁퉁 불어 먹기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같이 간 동료가 “화란이 어디야?” 묻는다. 넌 아직도 그걸 모르냐 무식하기는 하며 다툼을 벌이는 사이 뽀얀 국물을 자랑하는 순댓국이 나온다.
뽀얀 국물 맛을 한 숟가락 떠 맛을 음미해 본다. 기본적으로 순댓국 육수는 돼지고기와 돼지뼈를 충분히 고아서 뽀얀 국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대충 끓여내는 집은 육수 색도 누렇고 돼지 잡내도 많이 나기 때문에 조미료를 많이 사용한다. 간을 하기 전 MSG 첨가량을 확인하는 것도 빼먹지 말아야 할 과정이다.

어쩌다 MSG량이 너무 많다고 불평을 해도 이 집을 좋아하는 직원들이 많기에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나는 소뼈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순댓국을 좋아하는데 말이다. 요즘은 입맛이 통일화됐는지 무슨 음식의 육수든 대부분 비슷한 맛이 난다.

어떤 집에서는 가끔 당면 순대가 터져 나오고 내장이 돌돌 말린 경우도 있는데 이는 대부분 주방장의 실수이다. 육수를 펄펄 끓인 다음 따로 조리한 순대와 내장을 넣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육수와 같이 넣고 끓이면 당면 순대가 불어 터지고 내장도 말리게 된다.

수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뽀얀 순댓국에 새우젓과 들깻가루, 고추 다진 것 조금과 고춧가루 양념장을 덜어 넣어 맛을 내본다. 나의 경우는 냄새도 잡고 구수함을 높이기 위해 들깨가루를 듬뿍 넣는다.


시장 골목에 있는 순댓국집이나 인기가 많은 순댓국집은 양념장을 고명처럼 미리 얹어 주어 테이블 회전율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그나저나 순댓국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지역별로도 명성이 자자한 순댓국집이 도처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는 한데 역사가 어느 정도인지는 도통 모르겠다. 요즘 유명한 지역별 순대 브랜드를 보면 경기도에 백암순대가 있고 충청도는 병천순대가 있다. 그리고 강원도의 오징어순대와 명태순대, 전라도는 암뽕순대, 함경도는 찹쌀순대와 아바이순대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다.

지역별로 유명한 순대가 이처럼 많으니 역사도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사료에 등장하는 순대 관련 정보는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한국전쟁 이후에 많이 등장했으리라 보인다.

육경희가 쓴 ‘순대 실록’(BR미디어, 2017)을 보면 순대 조리법이 최초로 언급된 책으로 1830년대에 편찬된 종합 농업기술서인 ‘농정회요’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보면 순대는 도 저장이라는 음식으로 “돼지 창자를 깨끗이 씻어 피를 헤아려 가져다가 참기름, 콩나물, 후추 등의 재료를 골고루 섞은 다음 돼지 창자 속에 집어넣고 새지 않도록 양쪽 끝을 묶은 다음 삶아 익힌다. 식은 후 납작하게 썰어 초장에 찍어 먹는다”라고 조리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돼지 창자를 씻을 때 당시로서는 상당히 비싼 재료인 설탕을 써서 누린내를 제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시의 돼지 순대는 지금과는 다르게 무척 고급 음식이지 않았나 싶다.
그 이후에는 19세기 말에 쓰인 요리책 ‘시의전서’에 한글로 도야지순대조리법이 등장한다.
“돼지의 창자를 뒤집어 깨끗이 씻고, 숙주, 미나리, 무를 데쳐서 배추김치와 같이 다져, 두부를 섞어 파, 생강, 마늘을 많이 다져 넣고 깨소금, 기름, 고춧가루, 후춧가루 각색 양념을 섞어 피와 함께 주물러 창자에 넣고 부리 동여 삶아 쓴다”라고 되어 있는데 현재의 순대와 가장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부산에는 돼지국밥이란 게 있다. 순댓국과는 큰 차이는 없는데 돼지국밥은 오로지 돼지뼈와 돼지고기 등 돼지의 부산물로만 끓여 낸다는 점이 다르다. 순댓국의 국물은 소뼈, 돼지뼈, 돼지 부산물로 만드는데 일부에서는 닭뼈도 함께 넣어 육수를 만든다.

전주 남문 시장에 가면 조점례 피순대 집이 있다. 이 지역은 암퇘지의 새끼 보인 암뽕을 많이 담아주는데 내 입맛엔 더없이 좋을 뿐이다.
물론 서울에도 유명한 순댓국집이 많다. 그중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영등포 대림동 삼거리 먼지막 순댓국(대림1동 963-9)은 싼값에 오소리감투, 암뽕, 머리고기 내장으로 구성된 술안주를 내놓아 적은 비용으로도 술 한잔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순댓국은 풍부한 단백질과 탄수화물, 지방 등 많은 영양분을 보충할 수 있어서 예전에는 더없이 좋았을 것 같다. 영양공급이 충분한 오늘날에는 높은 칼로리를 조심해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