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동지 팥죽

by 이상훈

잊힐 것만 같았던 동짓날 팥죽이 유통업체의 홍보 덕분으로 도시에서도 흔하지 않게 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도 아이 엄마가 어른들이 많은 동네 모임에 팥죽을 준비해 가면서 내 몫으로 조금 남겨 둔 것을 딸아이가 올해 마지막으로 수영장을 다녀온 날 몇 숟가락 입안으로 떠 넣어 보았다. 단 것이 많은 요즘 팥죽의 맛은 기억 속의 그 맛은 아닌 듯 싶다.

어린 시절 새알이 들어간 팥죽을 먹을 때는 눈이 펑펑 내렸다고 나의 뇌가 기억을 호도하고 있다. 물론 방학을 맞은 때였으니 눈이 내린 날이 많았을 것 같다. 팥죽을 매년 집에서 만들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옆집이나 혹은 옆집의 옆집에서 한 것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단 것이 많지 않았던 시절엔 호박죽, 과즐, 조청과 함께 훌륭한 간식혹은 주식으로서도 전혀 손색이 즐겼던 음식이다.

특히 뜨거운 팥죽을 호호 불면서 입안에 넣으면 눈물이 찔끔 나도록 감당하기 어려운 뜨거움이 가득 차는 데 이때 시큼 달콤한 동치미 국물을 한 숟가락 퍼 넣어 가면서 먹던 맛이 지금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둔갑돼 입안에 침이 고인다.
팥죽을 하고 팥죽으로 동토 나지 않도록 문 앞에 뿌리기도 했는데 유대인들의 파스카 축제를 연상하게 한다.
들판에 하얗게 눈이 내리고 지붕 위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두께로 눈이 쌓였던 시절 처마에 달린 고드름에서 반사된 영롱한 빛으로 아침을 열던 그 어린 시절의 겨울.


이제는 생각나는 것도 많이 줄고 장독 뚜껑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맨손으로 치우고 장독 안의 살얼음 속에서 꺼내지던 시큼 달콤했던 동치미와 팥죽 정도다.

어쩌면 시각에 의한 것보다 미각이나 후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더 아련한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