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골에 사는 동생네로부터 고구마 두 상자가 도착했다. 여동생 남동생이 번갈아 챙겨주니 번번이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상자를 뜯어 고구마 상태를 보고 전기 고구마에 구워 먹으니 맛이 일품이다. 회사에도 가져가 커피와 함께 먹기도 했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성우는 할머니 입맛이라고 할 만큼 고전적이다. 배춧국이나 아욱 된장국을 좋아하고 대신 햄버거나 치킨 등을 입에 대지 않는다. 어렸을 적부터 누군가가 입맛을 길들여 주어야 가능할 법했을 텐데 타고난 입맛인 듯 우리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미각을 가졌다. 아이 엄마가 잠시라도 편 하려고 주문 음식으로 때우려 하면 음식 타박이 이만저만 아니다. 요새 아이들의 입맛과는 정반대로 말이다.
성우가 좋아하는 메뉴 중 고구마 줄기 볶음도 있다. 성인이 된 지 한 참인 우리가 맛을 알기에도 어려운 것이 고구마 줄기인데 그 아인 참으로 우리 고유의 맛을 아는 듯 고구마 줄기를 찾는다.
고구마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1600년대이다. 기껏해야 500년 안쪽이다. 영향을 준 선대 DNA가 있어도 400년이 조금 넘을 뿐이다. DNA가 갖는 영향력은 참으로 위대하다.
고구마가 일본말인 고귀위마(古貴爲麻)에서 유래되었듯이 기록에 의하면 일본에 특히 대마도 등에 표류했던 우리 어부들을 중심으로 소개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한 것은 영조시대인 1763년 조엄이 일본 통신사로 가면서란다.
고구마에는 식이섬유와 비타민C가 풍부하게 들어 있어 변비와 감기를 예방할 수 있다. 특히 식이섬유는 혈관 속의 콜레스테롤 배출을 도와주어 동맥경화와 같은 성인병 예방에 좋다. 또한 고구마에는 당근 호박 등에 많이 들어있는 베타카로틴도 풍부하게 들어 있는데 이 베타카로틴은 위암과 폐암을 예방한단다.
이렇게 훌륭한 군것질 거리였던 고구마가 옛날에는 구황작물로 재배되었고 내가 어렸을 적 만 해도 밥과 함께 지어져 쌀의 량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사용되었다.
옛날 우리 집 윗방에는 가을 수확기가 되면 고구마 한 가마니가 꼭 놓여 있곤 했다. 집에서 고구마를 재배하지는 않았던 까닭에 주로 산골에 주문하여 갖다 놓거나 친척분들이 주신 것을 자전거 등으로 싣고 온 것이다. 그러면 가으내부터 겨우내 까지 고구마를 가마솥에 찌거나 아궁에 구워서 먹는다. 구워서 먹는 것이 수분 함량도 적고 쫄깃한 식감이 장난이 아니다.
부모님의 일손을 도와준다는 핑계로 부엌에 남아 아궁이에 몇 개의 고구마를 넣고 구수하게 익기를 기다렸던 모습이 거리는 엊그제인 듯한데 하얀 터럭이 머리 이곳저곳에 수북이 쌓인 나이가 됐다.
특히 김장을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속이 찬 배추를 겉절이 김치로 담가 고구마와 같이 먹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침샘이 폭발하는 듯하다.
이런 일은 겨울방학 동안 외가에서도 계속되는데 방학을 이용하여 외가댁에 가면 소여물을 끓이는 가마솥이 있던 건넌방에 소나무 가지나 솔잎 등을 넣고 소여물을 끓이고 난 후 거센 화력이 좀 잠잠할 무렵 잔불 속에 고구마나 알밤 등을 넣어 굽는다. 잠시 후면 아궁이 안에서 밤 터지는 소리가 금세 들리기 시작하는데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님들이 꼭꼭 숨겨놓고 보던 연애소설 나부랭이를 읽으려치면 알밤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곤 했다.
부리나케 나가보면 터진 알밤 속 파편으로 아궁이 입구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알밤 표면에 숨구멍을 내주어야 하는데 당시엔 알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알밤은 하나도 먹지 못하고 그래도 잔불 속에서 고구마라도 건져보면 표면은 거뭇하여 먹을 수 있을까 싶다가도 탄 부분을 벗겨 보면 속은 먹음직스러운 짙은 황금빛깔의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고구마를 만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나에게 간식을 마련해 준 것보다 내가 스스로 간식을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더 큰 듯싶다. 물론 그렇게 하라고 고구마를 사다 건넌방에 놓아둔 것이겠지만... 이제 고구마 먹는 철이 시작됐다.
다양한 음식들을 골고루 섭취해 건강하게 또 한 해를 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