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뚱딴지

by 이상훈


전날 술을 먹지 않은 요즘 아침이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책을 본다. 내 형편에 뚱딴지같기도 하지만 사실 처가 식구 중 한 분이 주택관리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한다고 해 아이 엄마의 강권에 못 이겨 공부 아닌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공부라고 해봐야 졸린 눈 겨우 붙들어 매고 책장이나 넘기는 수준을 크게 넘지는 못한다. 이 수준의 공부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 우선 찾는 것이 따뜻한 물 한잔이다. 간혹 보리차가 없으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볶은 ‘돼지감자’ 몇 알을 끓는 물에 띄어 차로 우려내 마시면 구수한 맛을 입 안 가득 느낄 수 있다.

몇 해전 어머니께서 혈당이 높은 며느리를 위해 일부러 돼지감자를 심어 수확한 것인데 덕분에 내가 가끔 몇 알 씩 차로 우려 마시며 덕을 보고 있다.
올해에도 늦은 여름 시골에 가보니 엄청난 크기의 돼지감자 줄기가 창고 뒤쪽을 점령하고 있다. 보통 1.5미터 이상 자라기 때문에 그 사이 다른 작물은 자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잎사귀도 길쭉길쭉하고 꽃은 해바라기 모양의 노란색을 띠고 있고 크기는 좀 작다. 그래서인지 해바라기의 영어 이름이 '선플라워'이듯 돼지감자의 또 다른 영어 이름은 '선루트'나 '선 초크'이다. 해바라기와 사촌지간인 듯 말이다. 또 돼지감자란 놈은 한번 심어놓으면 활착이 좋고 성장도 눈부시다.

땅 위 줄기 높이만큼이나 땅 속 줄기의 길이도 비례하는 듯 길게 줄기를 뻗어내고 있어 감자보다 훨씬 많은 양의 소출을 얻을 수 있다. 수확을 다 끝내고 다른 이유로 땅을 경작하다가도 전혀 엉뚱한 곳에서 그 녀석을 만날 수가 있다. 그렇게 캐낸 것을 별도로 모아 놔도 한 광주리는 될 것처럼 말이다.

이 녀석은 해마다 심지 않아도 밭이나 둑 이곳저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땅 속 덩이줄기 모양이 우리가 생각하는 감자와는 조금 다르다. 보통 돼지감자로 불리는 덩이줄기에서 이곳저곳으로 이어져 나간 가는 줄기로 인해 울퉁불퉁한 모습이 감자라고 불려도 되나 싶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분리된 생강의 다른 모습 같기도 하다. 날 것으로 씹으면 아삭 거림이 있고 그래서인지 지구 사과라고 불리기도 한다. 맛은 약간 달착지근한 것이 무나 우엉의 맛이다. 날 것의 효능이 더 좋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사용하는 널찍한 칼로 일일이 잘라 말려 볶아 놓거나 장아찌를 만들어 놓는다. 가끔 먹어 보기도 했는데 깔끔한 식감이 나쁘지 않다.
어머니도 처음에는 돼지감자의 엄청난 수확량에 놀라 깜짝 놀라셨나 보다. 그다음 해에는 자라는 즉시 캐버리는데 집중하신 듯 창고 뒤엔 한 그루의 돼지감자 풀만 자랐다. 생존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 녀석의 DNA를 땅 속 어딘가에는 꼭 남겨놓는다. 돼지감자란 녀석은 해바라기씨만큼은 아니지만 열매를 만들기도 해 땅속과 공중에서 양동 작전하듯 흔적을 남긴다.

내가 하는 공부 흉내가 '뚱딴지' 이듯 이 녀석의 별명이 좀 생뚱맞게 '뚱딴지'이다. 우리말의 '뚱딴지'는 “엉뚱한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인데 이 녀석이 뚱딴지라는 이름을 갖는데 다 사연이 있겠지 하며 검색을 해봐도 도통 특별한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란 말이 있긴 한데 내가 생각하기엔 좋은 효능에도 불구하고 잘 보살피지 않아도 되는 돼지감자의 엄청난 생식능력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딴지’라는 것이 비표준어이기는 하지만 무언가에 대하여 반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말이다. ‘뚱'도 엉뚱하다. 뚱뚱하다 등으로 사용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역시 많다.

보통 사람 몸에 좋은 것들 하면 가꾸기가 까다롭거나 구하기가 예삿일처럼 쉽지가 않다. 그런데 이놈은 칼로리 낮은 다당류인 이눌린(inulin 8~13%)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천연 인슐린으로 평가받고 있다. 혈당이 높거나 당뇨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보다 더 좋은 식재료가 없다. 그런데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병충해에도 강해 한 번 심어 놓으면 사람의 손길을 받지 않아도 수확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도 다른 작물과는 많이 다르다. 이런 면에서 참으로 엉뚱하고 생뚱맞다는 것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긍정의 '뚱딴지'이지 않을까!

토양에 부담감을 줄 정도가 아니면 정말 좋겠다. 감자나 고무마가 구황작물로 기름진 땅이 아니더라도 잘 자라 기는 하지만 무한정일 수 없고 지속적으로 재배하면 땅이 황폐화될 우려가 큰 것과 같은 이치일 게다.

하나 다른 작물에 비하여 일손을 현격하게 줄일 수 있고 남다른 수확량을 기대하는 것은 물론 천연 인슐린 식품재료로 각광을 받고 있으니 가성비 하나는 절대 갑이다. 그래서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임에도 돼지감자, 뚱딴지라는 우리 이름을 가지고 있나 보다. 돼지감자는 학명이 Helianthus tuberosus이다. 보통 H. 튜베로서 라고 부르며, 지역에 따라 예루살렘 아티초크 혹은 지구 사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은 쓰임도 많았다는 뜻일 것인데, 유럽 사람들이 아메리카에 발을 딛기 전에 그곳 원주민들은 이미 돼지감자인 튜베로서를 음식소스로 이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