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겨울 음식 콩비지

메생이 국 같이 속이 뜨거운 또 하나의 겨울 음식이다.

by 이상훈


콩꼬투리에 서리가 앉고 귓가에 얼얼함이 느 껴지는12월이 되면 어머니 집의 가마솥은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린다. 어머니의 콩은 지난 여름 집에서 북서쪽으로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논의 수로 주변 둑에서 수확한 서리태나 방콩이다.

어머니가 두부를 만드시는 모습을 보면 고요함이 있다.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이루어지는 정성과 흐뭇함이 있다. 머리 쓴 두건 속에서 흐르는 습한 기운 등으로 때로는 예술인의 작업과 같이 장엄함이나 고단함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어머니의 콩의 정성이라는 것은 밭에서 부터 이루어진다. 논 밭둑에서 일렬 리어커로 수확되어온 콩은 가을 햇볕에 말려지고 장도리 깨로 털어진 다음 멍석 위에 널어 지기를 며칠 간하여 콩의 단단함이 야무지다. 어머니는 굽으신 등과 울퉁불퉁 튀어나온 손 마디로 탑새기 등 이물질을 일일이 걸러낸다.

(요즘에는 콩만을 탈곡하는 기계가 있어 콩 재배를 많이 하는 집들은 콩 전용 탈곡기를 한 대씩 장만해 놓고 있다. )

그렇게 자루에 보관되어 오던 콩이 어젯 밤 씻겨지고 커다란 스테인리스 대야 안에서 불려진다.

다음 날 새벽 콩이 수분을 충분히 머금고 불려지면 분쇄기에 넣어 콩죽 같이 만든다. 예전에는 맷돌에

(맷돌을 사용할 당시에는 어린 나도 손을 많이 보탰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이 맷돌 손잡이가 ‘어처구니’였을 것이다. ) 갈아서 만들었는데 품이 보통 드는 것이 아니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요즘은 다양한 종류의 분쇄기가 많아 기계로 손쉽게 액상화 시킬 수 있다.
죽모양으로 갈린 콩을 가마솥 넣고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바닥 부분이 타지 않게 저어주는데 표면에 기포가 여러 번 솟아오를 때까지 끓여 준다. 그런 다음 삼베와 같이 조직이 성긴 자루에 콩죽을 퍼 담는다. 자루는 식당용 국통 같은 것에 넣어 담아야 콩물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넓이도 꽤 되고 깊이도 있는 국통은 콩죽 삶은 것을 짜는데 제격이다.

삼베자루를 떠받치기 위해 국통위에는 여러 개의 대나무나 각 구목으로 만든 받침대 혹은 어린시절 가지고 놀았던 고무줄 새총 같이 생긴 삼발이 형태의 나무 받침대를 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콩죽이 담긴 삼베 자루를 올려 놓고 절구 등으로 누르면 콩물이 삼베 섬유 조직을 빠져 나와 국통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이때 콩비지를 맛있게 먹고 싶으면 콩을 거칠게 갈아야 한다. 고소하게 씹히는 맛을 즐기기 위해서다. 콩물을 다 짜내고 나면 삼베 자루 안에 고형물이 한가득 남게 되는데 이것이 ‘콩비지’이다.

국통에 안에 담긴 콩물에 간수를 바가지 담아 조금씩 저어 주면서 넣으면 콩 단백질이 응고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걸 보통 순두부라고 하고 부드럽기가 ‘푸딩’을 넘어선다. 이걸 사각형의 두부 상자에 보자기를 깔고 담아 일정 시간 눌러주면 두부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부를 아침상에 올려주시니 황송하기가 이를 데 없다. 따뜻한 두부를 김장김치에 싸서 먹거나 돼지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묵은 김치와 볶거나 김치전골을 만들어 함께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우리 집은 보통 두부 만들 때 부산물로 나오는 비지로 비지찌개를 끓여 먹는데 고소하면서도 깔끔한 맛이 기가 막히다. 우리 집사람도 어디서 배워왔는지 손맛이 일품이다.

엊그제는 지난달에 가져와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콩비지를 집사람의 레시피로 만들어 보았다. 비지는 발효시키지 않은 생비지도 맛이 있지만 따뜻한 아랫목에 담요 등으로 감싸 발표시킨 비지도 특유의 퀴퀴한 감칠맛이 있어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생비지든 발효시킨 비지이던 중요한 것이 맛있는 돼지고기를 구하는 것이다. 돼지 특유의 비린내 등 잡내가 나지 않고 육질 좋은 돼지고기를 식재료로 써야 비지찌개의 깊은 맛을 더 할 수 있다. 돼지고기는 먹기 알맞은 크기로 썰어 들기름 등으로 일차 볶아주고 그다음에는 묵은 김치를 적당량 썰어 넣고 돼지고기와 함께 볶는다. 여기에 마늘 다진 것과 육수 그리고 비지를 함께 넣어 끓여주면 되는데 간은 새우젓으로 해야 맛이 더 깔끔하다.

추운 겨울 이렇게 만들어진 콩비지찌개를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돼지고기의 구수함과 김치의 깔끔함 그리고 콩비지만이 갖는 고소함으로 입안에 춤바람이 분다.

아침에 도착한 자식들에게 따뜻한 두부 밥상을 만들어 주려고 새벽녘부터 콩을 물에 불리고(오래된 콩은 하루 정도 물에 충분히 불려야 한다) 분쇄기로 가셨던 어머니가 요즘은 부쩍 몸이 안 좋아지셨는지 콩 수확하는 일을 힘들어하신다.

얼마 전 시골에 내려가 논둑을 점령하고 있던 콩 넝쿨을 낫으로 잘라 마당에 부려 놓은 적이 있다. 보통 옆집 경운기를 이용하여 운반해 오는 데 옆집이 바쁘면 리어카로 몇 번을 집 마당으로 날라야 한다. 추석 때는 이 콩으로 정말 맛있는 식사를 했었는데 중지 손톱 만했던 콩은 어느 사이 수분이 마르고 색도 검붉은 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크기도 새끼손가락의 손톱 크기 정도로 줄어 우리 익히 아는 마트 매대에 있는 콩 모양을 하고 있다.

두부가 되기전 응고된 형태 그대로 퍼올려 만들어진 순두부 <강원도 경포 초당 400년 집 순두부 전골>




시골에서는 봄 모내기철 둑을 손질하면서 콩을 함께 심는데 싹도 트기 전에 두더지나 새들이 훔쳐가는 바람에 콩 한주먹 먹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손이 가는지 모른다. 콩이 어느 정도 자라면 웃자라지 않도록 낫 등으로 가지를 쳐주는 데 그러면 곁가지가 많이 나와 콩 수확량을 늘릴 수 있다.


척박한 땅에 콩을 심어 놓으면 땅이 비옥해진다는 설도 있다. 콩이나 땅콩 뿌리의 결절에 사는 뿌리혹박테리아(Rhizobium)가 질소성분의 비료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콩은 이처럼 땅도 비옥하게 해 주고 초식동물의 단백질원이 되기도 하는 영양 만점의 작물이다. 지난번 '어서 와~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한 모로코 사람들이 한국의 다양한 콩요리에 놀라던 모습을 보며, 우리 민족이 콩을 많이 먹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아 GMO 걱정이 없는 콩으로 만든 비지를 앞으로 얼마나 더 먹을 수 있을까? 이젠 내손으로 우리 이웃에게 맛을 보여 줄 때도 된 듯한데 나의 몸은 느리고 세월은 화살처럼 빠르니 어쩌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