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가 대유행이다. 며칠 사이 감염자 수가 급상승하면서 동네마다 소독제인 알코올과 마스크가 동이 나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면 평소에는 잘 알지 못했던 인간군상의 모습들 드러내기 시작한다. 감염자가 다녀간 동선이 그려지고 같은 동선에 있던 사람들끼리 불안 심리가 팽배해진다. 개학이 연기되고 학원과 종교단체가 당분간 문을 닫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직장에 다니는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이불 밖으로 나선다. 또 다른 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원행에 나서기도 한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바뀐 세상에서도 어른들은 여러 가지 이유 등으로 생업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내가 어렸을 적에 보고 겪었던 갯고랑에 대한 추억도 어떤 면에선 많은 것이 닮아 있다.
내가 어렸을 적 갯고랑은 많은 것을 품고 있었다. 찾는 이 또한 많았다.
낮 동안에는 아이들이 순례를 하며 갯벌에서 이합과 짱둥어를 잡는다.
재수가 좋은 날엔 구워 먹으면 맛이 일품인 민챙이도 잡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양동이나 포대에 적당량 이합이나 게를 채워 각자의 이동 방법으로 둑까지 가지고 나온다. 가을 갯둑 주변은 이갈색의 메뚜기가 떼 지어 날아다닌다. 갯고랑에 뚫린 수 만개의 구멍들 사이로는 짱둥어나 농게 등 게 종류가 들락거린다.
낮동안 아이들이 다녀가고 물때에 맞춰 들어온 배에서는 갑오징어가 내려지기도 하는데 갑오징어 몸 안에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흰색의 넓적한 뼛조각이 하나 들어 있다. 가정상비약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상처부위를 소독하는 것으로 쓰였다는데 내가 어릴 적에는 그 흰색의 뼛조각으로 남의 집 담벼락에 낙서를 해댔다. 학교 가는 길목에 있던 집들의 담벼락엔 이렇게 검은색 크래용이나 크래용을 갖지 못한 아이들이 갑오징어 뼛조각으로 빚어낸 정체 모를 추상화들로 가득했다. 사춘기에 접어든 고학이면 "누구와 누군가가 사귄다."라는 글을 넣기도 하는 등 글을 처음 배운 아이들에겐 호기심 넘치는 낙서장이 되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일을 마친 농군들이 낫을 씻고 흙을 털어 내는 등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웅덩이의 고인 물에 몸을 씻는 의식을 갖는다. 간혹 그물을 가지고 나온 이는 바닷물에 그물을 펼쳐보기도 하고 어떤 이ㄴ 새벽녘 쳐 놓은 통발에서 숭어나 새우 등 반찬거리를 털어내기도 했다.
바람이 없고 달이 밝은 밤에는 청춘남녀들이 갯가의 억새밭에 모여든다. 시골에서 남의눈을 피해 남녀가 만나 밀어를 나눌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다. 전화가 없으니 약속 한번 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과 달이 숨죽여 그들을 응원하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도록 말이다. 아마도 그때의 달은 집을 나설 때나 집으로 돌아올 때나 항상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주었을 것 같다.
갯고랑마다에는 큼직한 수로가 연결되어 있다. 수로의 가장자리에는 갯둑을 지나 농사용으로 사용되었던 물을 내뱉는 큼직한 관이 툭 튀어나와 있다. 관은 지표면에서부터 거의 5미터 깊이로 묻혀 있는데 갯고랑의 깊이와 더해져 엄청난 울림을 냈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그곳은 저녁 색을 두배는 더 검게 했고 떨어지는 물소리는 몇 갑절 더 무겁고 울림이 있었다. 혼자 그곳을 지난다면 아마도 귀신의 울음소리로 여길 만큼 말이다.
이웃동네에서 한잔을 걸치고 들어오는 이에게는 이 소리가 나침반 같아 갯고랑이 멀지 않음을 알려 주기도 하고 이 소리에 끌려 갯고랑에 빠져들기도 했다. 어릴 적 갯고랑 인근에는 몇 가구의 집들이 흩어져 있었고 많은 이의 삶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메말랐던 것 같다.
또 다른이유로 갯벌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새벽녘 땔감이 부족한 집의 가장들이다. 가장들은 갯벌에서 나오는 갈대를 한 짐 베어 집 앞에 부리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 댁 안주인은 이것으로 밥을 하고 물을 끓여 냈다. 그날도 가장은 군복 같은 바지와 역시 군복 같은 윗도리를 입고 수건을 목에 동여 멘 모습으로 낫과 지게를 짊어지고 나갔다. 간혹은 나는 그 모습을 상상하며 담배 한 대 정도는 피워 물게 했다. 한 시간 정도만 작업을 하면 사람은 보이지 않을 만큼의 갈대 한 짐을 꾸릴 수 있었다.
갯고랑엔 한도 많다. 많은 이가 목숨을 내놓기도 하고 목숨을 내주기도 했다. 술을 먹고 들어갔던 이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기도 하고 이합을 주우러 간 옆집 아이가 빠져 죽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바다에 원한이 맺힌 처자의 혼이 있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날이 바뀌고 해가 바뀌면 밤과 낮을 달리하여 많은 이들이 갯벌을 찾았다. 그것은 삶이기도 하고 숙명인 듯했다. 슬퍼도 가야 했고 무서워도 가야 했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