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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LK Jun 05. 2017

미국, 흑인, 그리고 인종주의

NMAAHC 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에 친구와 함께 NMAAHC (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에 다녀왔습니다. 번역하자면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문화 박물관” 정도가 되려나요? 이 박물관을 방문하게 된 것은 이 박물관이 작년 9월에 개장한 신생 박물관이기도 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 미국 흑인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명한 첫 국립 박물관라는 중요한 의미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기에 문을 열게 되어 워낙 관심을 많이 끈 박물관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욱 인기가 많아서인지 개장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입장권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국립 박물관의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워낙 관람객이 많이 몰려서 매일 오전 6시에 공식 웹사이트에서 시간대별로 당일 입장권을 배포하는데 순식간에 표가 동날 정도니까요. 몇 차례 새벽잠을 못이기고 실패하다가 당일 입장권을 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박물관은 동선부터 독특했습니다. 박물관은 역사, 문화, 공동체 갤러리 - 크게 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워낙 방대한 규모여서 이날은 역사 갤러리만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 갤러리는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관람객은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지하 3층에 내려서 시대순으로 관람을 하면서 지상으로 다시 올라오게 됩니다. 투명 유리로 되어 있는 엘리베이터 바깥에는 미국 흑인의 역사에서 중요한 연도들이 역순으로 차례차례 관람객의 눈앞에 보이는데요,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2008년부터, 공공 장소에서 흑인에 대한 분리정책을 공식적으로 철폐한 1964년, 그리고 흑인 노예제가 폐지된 1865년 등 - 중요한 역사적 연도들을 되새기게끔 연출해 놓았습니다. 지하 3층에 도착하면 “노예제와 자유, 1400-1877” (Slavery and Freedom 1400-1877) 라는 역사 갤러리의 첫 공간이 보입니다. 미국이 건국되기 이전부터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유럽 각국이 본격적으로 대서양을 건너 신세계The New World에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끌고 와서 노예제에 기반한 사회와 경제를 건설하기 시작한 시대이죠. 미국, 그리고 미국 흑인의 역사가 “대서양사” (Atlantic History), 그리고 "대서양 노예무역" (The Atlantic Slave Trade)이라는 좀 더 큰 역사적 맥락과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구조인 것 같았습니다. 이 공간에서 또 주목할 만한 점은 “American Freedom”이란 말로 대중의 미국사 인식 속에서 신성시되어 있는 “미국의 자유”라는 것이 바로 흑인 노예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는 점 - 즉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택한 미국 “백인”의 자유라는 것이 바로 인종주의적 노예제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시공간 곳곳에서 보이는 “자유의 한계” 또는 “자유의 역설”이라는 문구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전시물들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지요.

          두 번째 공간은 “자유를 수호하기, 자유를 정의하기: 분리정책의 시대, 1876-1968” (Defending Freedom, Defining Freedom: The Era of Segregation 1876-1968)입니다. 미국 북부(The Union)와 남부(The Confederacy)가 노예제 폐지와 미국 연방 존속을 놓고 벌인 미국 내전The Civil War (1861-1865)이 북부의 승리로 끝나고 노예들은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이후로 거의 백년 남짓 이어지는 차별과 억압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특히 이곳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자유를 얻은 이후에도 백인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국 흑인들의 처참한 삶이었습니다. 흑인들이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 뒤 마을 나무에 공개적으로 시체로 내걸려 있는 19세기 후반의 사진들, 흑인 전용 화장실과 흑인 전용 식수대 등으로 상징되는 20세기의 분리 정책을 보여주는 사진들, 그리고 흑인 전용 학교, 학급이 아닌 백인들과 같이 공부하는 학교로 등교하는 흑인 학생을 둘러싸고 위협을 가하는 백인들을 보여주는 사진 등 - 두 번째 공간의 기록들은 저에게 오히려 첫 번째 것보다 더 참혹하게 느껴졌습니다. 첫 번째 공간은 아예 자유 자체가 박탈되었던 반면에 두 번째 공간의 모습은 자유를 보장해 줄 온전한 정치적 권리가 없는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실례로써 보여주기 때문이겠죠.

          마지막 공간인 “변화하는 미국: 1968년과 이후” (A Changing America: 1968 and Beyond)는 미국이 1964년과 1968년의 민권법 제정으로 공적 공간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분리를 금지하고, 상업 거래와 매매 행위에서 인종에 의거한 차별을 불법화시킨 이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곳에서는 엄혹했던 19세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구조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도시와 교외” (Cities and Suburbs)라는 제목의 소섹션에서는 바로 미국 도시들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는 슬럼화의 문제를 잘 보여주죠. 백인 중산층들이 대거 교외로 빠져나가며 도시 중심부에는 빈곤한 유색인종 인구가 주를 이루게 되고 점차 도시의 재정과 치안이 동시에 악화되며 범죄의 온상이 되는 서글픈 현실이 적나라하게 보여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과 활발한 흑인 인권 운동들을 보여주는 소섹션들도 있었지만 말이죠.

          세 번째 공간을 끝으로 관객은 지상에서 “사색의 공간” (Contemplative Court)을 마주치게 됩니다. 이곳은 코트라는 명칭이 말해주듯이 공간 내부 위쪽에 유리 지붕이 덮여 있고 그곳에서 물이 흘러나오게끔 연출해 놓았습니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저명한 흑인 민권 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이 1955년 구약성서 아모스 서의 구절을 인용하며 했던 유명한 연설 중 일부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를' 때까지 결연하게 투쟁할 것입니다. (we are determined … to work and fight until ‘justice runs down like water,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성서 구절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번역입니다.)

사색의 공간은 바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지요. 역사 갤러리 관람을 다 마친 관람객들로 하여금 미국 흑인의 “자유를 향한 여정”이 미국 사회의 끝나지 않은 과제임을 잘 상기할 수 있게 해놓은 영민한 공간 연출이라고 생각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상층에 마련되어 있는 카페 벽면을 1960년대 민권 운동 당시 “싯-인” (Sit-in) 투쟁을 벌였던 흑인들의 사진으로 꾸며놓은 점이었습니다. 이 싯-인 투쟁이라는 것은 당시 흑인 전용 레스토랑과 상점들만 출입할 수 있었던 흑인들이 백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들어가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백인들이 조롱하거나 위협해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이 투쟁 방식의 핵심이었죠. 비폭력 투쟁의 결을 잇는 운동 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박물관의 카페 벽면을 바로 그 싯-인 투쟁 당시 레스토랑에 앉아있던 흑인들의 사진으로 꾸며놓았다는 점은 역사적인 기억을 재치있고 영리한 방식으로 환기시키는 박물관 공간 구성으로 느껴졌어요.  

          박물관은 제 기대보다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미국 흑인과 노예제에 대한 역사학계의 중요한 연구성과들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구성하고 배치했다는 점도 그렇고, 흑인 여성에 대한 별도의 섹션을 만들어서 인종적으로나 젠더적으로도 가장 약자였던 이들의 고초와 투쟁에 대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는 점도 그러했고요. 또한 제가 언급했듯이 공간 곳곳마다 재기가 넘치면서도 지적 자극을 주는 박물관의 전시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워싱턴 DC에 방문하시는 분들이 박물관 관람을 생각하신다면 꼭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하지만 박물관 자체가 보여주는 어두운 역사가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은 씁쓸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제가 박물관을 관람한 다음 날, 미국 NBA의 간판급 선수인 르브론 제임스Lebron James의 자택에 “네가 아무리 벤츠를 타고다녀도 너는 ‘검XX’”라는 인종주의적 낙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사건 자체보다도 제임스가 사건 이후 밝힌 자조적인 인터뷰가 눈에 더 끌렸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이 증오의 한복판에서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다며, “당신이 아무리 돈을 많이 가졌든, 얼마나 유명하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당신을 존경하든지 간에, 미국에서 ‘흑인’으로 사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인종주의는 언제나 미국의 일부일 것”이라는 그의 우울한 코멘트가 압권이었지요. 박물관 관람 당시 지금 대통령의 선거 구호였던 “Make America Great Again”이 새겨진 빨간 모자를 대놓고 쓰고 다니던 일군의 학생들도 생각났고요. 한 쪽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가 바로 우리 미국의 역사라고 이야기하는 이들, 다른 한 쪽에서는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을 배제한 백인만의 공동체를 꿈꾸는 이들 -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이 두 세계관이 여전히 이 나라에 상존해있음을 느끼게 되니 더욱 암울하기도 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의 세계관이 올바른 것으로 여겨지고 교육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겠지요. 민주주의가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으면 말라죽는 화초와 같다면, 인종주의는 바로 잡초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인종주의의 종식을 “당연한” 또는 “성취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를 기울이고 교육해야만, 우리는 이 잡초가 뿌리를 내리고 증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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