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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LK Jun 12. 2017

"특별행정구" 홍콩의 잿빛 미래

영화 <10년>을 보았습니다

올해로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지 정확히 20년이 되었습니다. 저도 홍콩 반환 당시에 TV 생중계로 영국 국기가 내려지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저는 홍콩영화가 한창 전성기일 때 유년시절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인 <중경삼림>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 반환 직전 홍콩영화의 마지막 빛나던 시절은 기억하고 있는 세대입니다. 또한 제가 중고등학생 시절만 해도 홍콩은 한국보다는 이른바 “잘 나가는” 국가라는 느낌이 강했었죠. 문화의 세련됨이나 국가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이야기할 때, 200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은 홍콩에 비하면 뒤처지는 느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2008년 홍콩을 실제로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 저는 다소 당황스러웠습니다. 홍콩은 서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어쩌면 서울보다도 규모도 협소한 데다가 더 남루해보이는 인상이었기 때문이죠. 제가 90년대 홍콩영화에서 기억하던 “세련된” 홍콩의 모습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제 친구는 이렇게도 이야기하더군요. “한국이 그만큼 발전했고, 이제는 홍콩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라고요. 과연 그러할까요? 이러한 도시의 세련됨에 대한 의견들은 접어두더라도 홍콩 반환 후 20년, 지금 홍콩의 모습은 우리가 흔하게 홍콩하면 떠올리던 “동아시아의 번영하는 국제 항구도시”와는 점차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5년 영화인 “10년”은 영화의 개봉시점부터 10년 뒤인 2025년 홍콩의 모습을 다루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5개의 단편 영화들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 영화인 “Extras”는 홍콩 행정부의 관리들이 노동절 행사에서 “가짜 테러”를 일으켜 국가안전법 (the National Security Law) 입법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조작하려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미 홍콩에서 국가안전법 제정 시도는 여러 차례 홍콩 시민들의 반대 시위를 촉발했었죠. 두 번째 영화인 “Season of the End”는 불도저에 밀려 파괴된 가옥들에서 물건을 찾아내 표본으로 만드는 커플 이야기가 나옵니다. “생명”을 잃고 “표본”이 되는 물건들, 그리고 주인공들 자신도 그 “표본”이 되어가고 있다고 읊조리는 자조적 대사들이 바로 정치적 개방성과 활력을 잃어가는 홍콩의 모습을 암시한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죠. 세 번째 영화인 “Dialect”는 말 그대로 홍콩의 언어였던 광동어가 중국 본토의 언어인 만다린어에 밀려 “방언”의 위치로 전락해버린 모습을 보여줍니다. 광동어만 구사할 수 있는 택시기사들은 점차 영업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고, 자식들이 만다린어를 익히기 어렵게 될까봐 점차 광동어를 쓰는 것도 자제해야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저는 이 세 번째 에피소드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언어야말로 지배와 권력관계를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죠. 주인공 택시기사의 광동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다가 택시 승객이 같은 장소를 만다린어로 발음하자 그제서야 발음을 인식하는 택시의 GPS 장치는 실로 희비극적입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인 “Self-immolator” (분신자살자)는 홍콩 독립을 외치며 분신자살을 하는 사건을 다룹니다. 이 에피소드는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 (실제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를 중간에 삽입하여 약간 다큐멘터리같은 느낌도 들지요. 이 에피소드 감독이 이야기했듯이 이 에피소드는 중국 본토에 대한 정치적 항의의 의미로 실제로 분신을 선택한 티베트인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Local Egg”는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주인공과 그에게 달걀을 공급하는 농장이 더 이상 “Local(本地) Egg”라는 명칭을 쓰지 못하고, “Hong Kong Egg”라는 명칭만 써야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영어Local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자本地로 표현했을 때, 왜 그 명칭을 중국 공산당 정부가 허락하지 않는지는 잘 유추할 수 있죠. 本地란 표현은 오직 중국을 대표하는 본토 정부만 쓸 수 있으며 “특별행정구”인 홍콩은 쓸 수 없는 겁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와 더불어 이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아들을 포함한 소년 공안(Youth guards)들이 “바람직하지 못한” 책을 판매하는 서점에 달걀 세례를 퍼붓는 장면은 마치 문화대혁명기의 홍위병을 떠올리게 하지요. 더불어 그 주인공의 아들이 보여주는 마지막 반전은 그 와중에서도 홍콩의 미래에 대한 일말의 희망도 갖게 하고요.

          영화 자체가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특히 네 번째 에피소드는 너무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이 잦아서 선전영화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두 번째 에피소드도 “표본”의 은유는 이해할 수 있지만, 장면장면의 디테일한 묘사만으로 끌고가기엔 에피소드 자체의 동력이 좀 떨어진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영화 <10년>이 점차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가 질식당하고 있는 홍콩의 현재 모습을 바탕으로 그 이후 펼쳐질 암울한 미래를 잘 표현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영화가 2015년 개봉 당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를 제칠 정도로 홍콩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해 35회 홍콩 금상장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점은 바로 이 영화가 홍콩인들의 고민과 불안 - 자신들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점차 중국 본토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 을 잘 포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일 겁니다.

          중국 정부는 예상했던 대로 당시 중국 본토에 금상장 영화제의 중계를 금지했고, 관영 언론들은 날선 어조로 영화 <10년>을 맹비판했죠. 그나마 이런 영화가 홍콩 내에서는 상영될 수 있고 홍콩 내의 영화제에서는 수상할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려나요? 저는 홍콩영화가 반환 이후에 활력을 잃고 몰락한 것은 어쩌면 정치적 자유와 개방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2003년 무렵 독창적이고 재기 넘치는 영화들로 새로운 부흥기를 맞은 반면, 십년 남짓 지난 지금, 비슷한 소재의 자기 복제 영화들을 답습하고 있는 한국영화계를 떠올리니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고요. 2047년까지 50년 동안 홍콩의 자치와 자유를 인정해주었던 “일국양제” (一國兩制)가 과연 껍데기만 남을지, 아니면 홍콩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다시 활기를 찾을지, 저로서도 우울한 전망이 앞섭니다. 한 가지 역설적인 것은 마지막 에피소드 “Local Egg”에서 농장을 폐쇄당한 주인공 지인이 대만으로 이주를 고려하고 있다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정부가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를 억누를수록 대만이 일국양제를 미래의 대안으로 고려할 가능성은 낮아진다는 겁니다. 비록 대만이 중국 본토와 비교해 정치∙외교적으로 현격한 열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만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 정치적 자유와 다양성이 보장된 중화권 국가 - 은 더욱 높아지게 될 거고요. 얼마 전 대만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것은 어쩌면 그 신호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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